현상권, 『헌법상 생명권과 낙태죄』, 연세대 행정대학원, 1982


 
- 요약 및 결론(생명권) -

생명권은 생명의 발생과, 유지, 발전과 소멸에 관한 모든 권리를 말하는 것으로서 인간의 모든 권리의 기점인 동시에 귀결점이다. 생명권은 자연법적인 권리로서, 우리나라 헌법상에는 명문의 규정이 없지만 생명이 인간의 존엄과 가치의 본질적이며 활력적인 요소라는 점에서 헌법 제9조의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근거로 인정할 수 있다.

생명권은 종래의 기본권이론이 모든 기본권을 그렇게 보았듯이 주관적 공권이지만 나아가서 객관적인 가치질서를 뜻한다고 본다. 따라서 헌법제정자에 의해서 정해진 객관적인 가치질서인 생명권은 모든 법분야에 효력을 미치고 입법, 사법, 행정의 모든 작용의 정책적 지침이 되고 국가의 통치구조는 생명권이라는 가치질서를 실현할 의무가 있다.

이러한 생명권의 내용으로는 자유권으로서의 방어권과 국가에 대한 보호청구권을 포함하나, 생명권에 대한 국가의 조성적 내지 촉진적 정책을 요구할 수는 없다고 하겠다.

생명권을 제한하는 일반법률유보조항으로서의 헌법 제37조 제2항에 의해 법률로써 생명권을 제한하는 경우에도 생명권의 본질요소를 침해할 수는 없는 것이며 따라서 생명권을 인간의 존엄과 가치에 반하는 방법이나 절차에 의해서는 침해할 수 없다고 하겠다.

생명은 생물학적 자연현상이지만 생명권이 법적인 보호의 대상인 한 생명의 개념도 법적으로 인지해야 할 것이며 결국 자연 현상으로서의 생명을 바탕으로해서 법적인 관점에서 그 내용이 정해진다고 보겠다. 법적인 관점에서 생명의 시기를 파악할 때 법의 분야에 따라서 견해가 달라지지만 헌법의 개념은 다른 법의 개념보다 일반적으로 더 광범위하고 포괄적인 특성을 가지며, 의심스러울 때는 기본권개념의 법적효력을 최대한 발현하는 해석원칙에 따른다면 헌법상의 생명의 시기를 수태시, 늦어도 착상시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즉 태아에 대한 헌법상의 보호는 전임신기간을 망라하는 것이다. 따라서 태아에게는 수태시 혹은 늦어도 착상시부터는 생명권이 주어진다.

태아의 생명권을 보호하는 법적 형태에는 헌법상의 보호와 형법상의 보호가 있다. 종래에는 형법상의 보호만이 논의되었으나 오늘날에는 헌법상의 문제로 등장했다. 헌법상으로 생명권이 인정되고 그러한 생명권의 주체로서 태아도 포함되므로 헌법상 태아의 생명권이 보호되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이 반드시 형법상의 보호도 요구하고 있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형법상의 보호외에는 실정상 그 어떤 법적보호도 효과적이지 못하다는 점에서 제재가 필요하게 되는 것이다.




형법상 태아의 생명권의 보호형태인 낙태죄는 서양의 중세 기독교 사상에 큰 영향을 받았고 인구정책적 이유나 인도주의적 입장, 윤리적 근거 등에 의해 주장되고 있으나 오늘날에도 그 의의가 있는 것으로는 인도주의적 입장이나 윤리적 근거 혹은 종교적 입장이 될 것이다.

이처럼 낙태죄가 규정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태아가 모체와 항상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나 기타의 현실적인 낙태의 필요성에 의해서 인공임신중절행위를 형벌의 대상에서 제외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대두되고 그 논거로서는 모체의 권리로서의 인간의 존엄성이나 자결권, 도덕원리로서의 황금율, 이중결과의 원리, 정의의 원칙 등이 있다. 그러나 이들 주장은 모두가 태아의 생명권을 보호하는 헌법정신에 비추어 볼때 타당하지 못하다. 모체의 인간존엄성이나 자결권이 생명권을 능가할 수 없고, 생명은 확실히 생명의 질이나 생활의 질보다 우위에 있는 것이고, 태아의 생명권은 모체의 생명권과 동등하다고 보아야 하기 때문이며, 인간의 생명은 분배 측정될 수 있는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 법질서의 권위를 내세워서 인공임신중절을 합법화시켜야 한다는 주장과 낙태죄를 규정함으로써 거꾸로 모체의 생명이 위협을 받게되므로 낙태죄는 부당하다는 주장등이 있으나 이들도 헌법상 태아의 생명권의 견지에서는 찬성할 수 없다.

이처럼 낙태죄의 당벌성이 구비되었지만 그 요벌성 내지 필벌성도 요구되는 것일까? 끊임없이 낙태죄의 위법성조각사유로서 주장되어온 근거에는 의학적 적응, 우생학적 적응, 윤리적 적응, 사회적 적응이 있다. 그러나 그것들 가운데 모체의 생명의 위험을 이유로 한 의학적 적응이외에는 생명권의 견지에서 인정할 수 없다. 생명의 최고가치성, 不대체성을 고려한다면 생명이외에는 생명과 同가치적인 것이 없기 때문이다. 형법 제20조의 정당행위 가운데 법령에 의한 행위로서의 모자보건법은 이와 같은 이유에서 모체의 생명의 위험을 이유로 한 의학적 적응이외엔 찬성하기 어렵다. 긴급피난의 이유에 의해서 인공임신중절을 정당화하려는 견해에는 이익형량설과 자연설이 있으나, 이때 긴급피난이 인정되는 것은 모체의 생명이 낙태의 생명보다 생명 그 자체로서 우월하기 때문이 아니라 태아의 생명권과 모체의 생명권이 충돌했을 때는 모체의 생명은 구할 수 있는 생명이나 태아의 생명은 구할 수 없는 생명이기 때문이다.

결국 모체의 생명을 구하기 위한 경우 이외의 낙태는 헌법상 태아의 생명권의 견지에서 허용될 수 없으며, 따라서 모자보건법은 제8조 제5호의 경우외에는 위헌의 가능성이 크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날의 급변하는 사회현상은 윤리의식에도 급속한 변화를 초래하고 있다. 낙태의 문제도 사회의 윤리의식과 법과의 갈등으로 보여진다.

자기자신에 관계된 도덕적 의무는 타인에 관계하여서는 윤리적 의무 및 권리로, 동시에 그것이 법으로 전화되면 법적 의무 및 권리로 된다. 인간과 사회를 규율하는 최대의 힘을 지닌 형법율은 바로 도덕성을 바탕으로 하고, 어떠한 행위이건 그 사회적 의미에 관하여 도덕성은 자의건 타의건 간에 평가의 기준이 될 수 밖에 없다. 오늘날 윤리의식이 낙태에 대해 관대해졌다고 하더라도 인간이 도덕적 의무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이 의무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자기의 인간실존에 대한 부정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태아의 생명권에 대한 도덕적 의무에서 자유롭고자 한다는 것은 자기의 생명권에 대한 부정도 또한 용인하는 결과가 되는 것이다. 법질서가 인간의 존엄성이나 생명권과 같은 윤리적 가치에 고백할 때 법질서는 도덕적 내용에 구속된다. 혹자는 말하기를 오늘날 낙태는 도덕적으로도 용인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도덕이 아무리 시와 장소에 따라 변화하는 가변적인 개념이라고 하더라도 인간사회가 존재하는 한, 그리고 도덕이 인류의 공동선과 인간의 자기완성을 지향하고 있는 한은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의 존중이 무시되어도 좋다는 그런 도덕은 결코 용인될 수 없다. 설사 다수가 아무런 양심의 가책없이 태아의 생명을 박탈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자체로서 도덕율이라고 말할 수는 없으며 또한 다수가 곧 정의도 아닌 것이다. 이 경우의 다수의 동의는 이기심의 집적에 불과한 것이며 인간의 존엄과 가치라는 인간의 지향해야 할 기본과제를 망각한 것으로서 이른바 한계상황이기 때문이다. 법은 이러한 한계상황을 인간의 "존엄"을 기본으로 하는 근본상황에로 환원시켜야 할 의무가 있다. 태아의 생명권을 인정하는 한 태아의 생명권의 타의 기존의 생명권보다 하위의 것이라고하는 평가나 태아의 생명권보다 모체의 자결권이 우위에 있다고 하는 식의 논리는 승인 할 수 없다. 헌법제정자가 생명권에 부여하고 있는 불가양의 절대적인 최고의 가치를 보호하고 실효성 있는 것으로 하기 위해서 국가는 최강의 무기인 刑罰權을 發動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하는 것은 기본권이 객관적인 가치질서라는데서 나오는 당연한 윤리적인 귀결이기도 하지만 타면 도덕성의 요청에도 부합하는 것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法이 그 실천가능성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법의 효력은 법실증주의자들의 논리처럼 법률이 스스로를 실현시킬 수 있는 힘을 가졌을 때 증명된다고 볼 수는 없다. 힘은 하나의 필연은 몰라도 결코 하나의 당위(Sollen)나 효력(Gelten)을 근거지울 수는 없기 때문이다. 법은 무릇 도덕의 가능성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불가피적으로 부도덕도 가능하게 할 수 있다. 그러나 법의 목적이 선으로 되는 가능성을 인간에게 있어서 도와주는 것이며 인간의 존엄성이 자율적으로 자기의 행위입법을 정립하여 스스로를 인간존재로 만들어 나가는 도덕적 자유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 있는 것이라면 법질서가 아무리 인간의 행위를 규제한다고 하더라도 결국 궁극적으로는 각자의 자발적 법의식을 통해서만이 법의 유효성과 인간의 존엄성은 실현되는 것이라고 볼 수 밖에 없다. 법적 정의는 인간의 존엄성이 확보될 때 실현되는 것이며 도덕을 그 목적으로 가지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인간의 존엄성과 결코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는 최고가치인 생명권의 존중이 일반의 인식가운데 확고히 자리잡을 때 만이 오늘날의 한계상황은 극복되고 근본상황으로 돌아설 수 있다.

法은 사회를 조정하는 도구이다. 법은 또한 인간의 행위에 대해서 법적인 평가와 사회윤리적인 평가를 가하는 정착된 표현이기도 하다. 따라서 법은 개개인에 대하여 어떠한 행위가 정의이며 어떠한 행위가 불의인가를 말해주는 것이다. 법은 낙태행위가 생명권을 박탈하는 분명한 불의라고 하는 것을 선언해야 하며 국가에 생명권 보호의 의무를 지워야 한다. 그리고 인간은 생명권 존중의 도덕적 의무를 다함으로써 스스로를 인간존재로 완성할 능력과 책임을 아울러 지닌 존재이다. 인간의 존엄성이 무시되는 사회, 인간의 생명이 자의적으로 박탈되는 사회는 도덕적인 사회는 아니며 이미 인간의 사회도 아니다.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만 생명을 희생시킬 수 있다는 원칙을 생명권 침해의 모든 경우에 일관되게 적용하려는 효력없이는 인간의 생명에 대한 존엄이나 헌법적 보장도 결국 약화 내지 무력화하고 말 것이다. 그 많은 인간적인 고민에도 불구하고 모체생명의 위험의 경우 이외에는 어떠한 낙태도 허용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른것은 생명의 존중이라는 헌법상의 가치질서를 어떻게 해서든지 지키려는 노력일 따름이다. 
 



==================================== 차         례 =======================================

제1장 서론(1)
 제1절 문제의 제기(1)     제2절 생명권과 낙태죄의 연구의 추이(4)
 제3절 연구의 방법(8)     제4절 연구의 범위(9)
제2장 생명권(11)
 제1절 인간의 존엄과 가치 및 생명권의 개념(11)
  1. 인간의 존엄과 가치의 개념(11)      2. 생명권의 개념(16)
 제2절 생명권의 범혁(17)
 제3절 생명권의 이념적 기초(18)
  1. 기독교사상과 인간생명(19)         2. 휴머니즘과 인간생명(20) 
  3. 사회주의와 인간생명(20)
 제4절 생명권의 법적성격(22)
 제5절 생명권의 내용(24)
  1. 소극적 생명권으로서의 방어권 및 보호청구권(24)
  2. 적극적 생명권으로서의 생명조성의 국가적 의무(25)
 제6절 생명권의 제한(27)
  1. 생명권과 법율유보조항(27)      2. 생명권의 대립과 비례의 원칙(28)
  3. 생명권 제한의 한계로서의 본질적 내용(30)
제3장 태아의 생명권에 대한 보호여부 및 보호형태(33)
 제1절 생명의 시기와 태아의 생명권(33)  제2절 태아의 생명권에 대한 보호형태(37)
제4장 낙태죄일반(42)
 제1절 낙태죄의 개념 및 범혁(42)          제2절 낙태죄의 보호법익(45)
 제3절 낙태금지의 논거(48)
제5장 낙태행위를 형벌의 대상에서 제외시키자는 논거(54)
 제1절 모체의 권리(54)                제2절 도덕 원리(64)
 제3절 법질서의 권위(69)              제4절 낙태죄로 인한 모체생명의 위협(72)
제6장 낙태죄의 위법성 조각사유와 생명권(74)
 제1절 정당행위(74)                       제2절 긴급피난(91)
제7장 낙태와 헌법판례(99)
 제1절 서독연방헌법재판소의 위헌판결(99)
 제2절 미국연방최고법원의 위헌판결(102)
 제3절 모자보건법의 위헌성(106)
제8장 요약 및 결론(110)
참고문헌(117)               영문초록(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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