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필호 편,『산아제한과 낙태와 여성해방』, 종로서적, 1990

1. 생략된 질문(머리말을 대신하여)

 낙태천국

 

1989년에 나온 정부 조사의 한 보고서에 의하면 지난 1년간 우리 나라에서 태어난 신생아는 60만 명이며, 인공 유산된 태아는 이의 두 배가 넘는 1백 20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또한 우리 나라 기혼 여성의 과반수가 넘는 53퍼센트가 인공 유산의 경험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을 연령별로 보면 40-44세가 65퍼센트 이상이며, 특히 서울 지역에서는 71퍼센트나 된다고 한다. 또한 의학계가 조사한 다른 의학 보고서에 의하면, 현재 서울 지역의 1년 낙태는 약 60만 건이며, 전국적으로는 1백 50만 건에 이른다고 한다.
이런 숫자는 기혼 여성 1천 명을 기준으로 하는 유산율로 따져 볼 때, 우리나라는 싱가폴과 더불어 지구상에서 "세계적인 수준"에 이르는 것이다. 우리 나라는  이미 아기 수출 세계 제1위라는 악명을 얻고 있었는데, 이제 낙태 천국이라는 악명을 추가로 얻게 된 것이다. 이 세상에 태어난 아이의 두 배가 넘는 태아가 햇빛도 보지 못하고 죽어 간다는 사실, 이것은 바로 신생아 3명 중에서 1명만이 세상에 태어난다는 말이 된다.

우리나라 형법 제269조와 270조는 분명히 낙태를 불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낙태가 이렇게 공공연히 성행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 법률 조항이 실제로 사문화되었거나 당국이 은밀하게 낙태를 방관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더 나아가서 당국은 단순히 방관하는 자세를 넘어서서 오히려 낙태를 묵시적으로 권장하기도 한다. 우선 모자보건법이 인공 유산 허용기준을 "모체의 건강을 해칠 우려가 있을 때"라고 모호하게 규정하고 있으며, 또한 보건사회부는 "월경조절법"이라는 명목의 사업으로 연간 10만-20만 명의 저소득층 산모들에게 인공 유산을 고의적으로 유도하고 있다.

원래 월경조절법이란 달력에 따라서 성교 날짜를 선택하는 "자연적(?)인 방법"이었다. 그러나 보사부는 "월경 시기가 10일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을 때, 임신 여부를 확인하지 않고 자궁내 물질을 흡입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초기 유산을 유도"하고 있다.

이렇게 보면, 1961년부터 시행된 정부차원의 가족계획정책 자체에도 문제가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우선 명백하게 그 뜻을 나타내는 "산아제한"이라는 표현 대신에 "가족계획"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에서부터 "기만성"이 도사리고 있다. 도대체 가정 생활을 잘 계획하려면 반드시 산아 제한을 해야 한단 말인가? 그렇지 않으면 산아 제한을 하는 길만이 가정을 잘 계획한단 말인가? 도무지 말도 되지 않는 말이다. 한마디로 우리나라 산아 제한 계획은 "양적인 인구 감소를 강조한 나머지 낙태를 통한 태아의 생명권 말살 풍조를 일반화시키는 역효과"를 낳게 했다고 결론 내릴 수 있다.

인공유산이 폐혈증, 골반 감염, 자궁외 임신 등의 합병증을 산모에게 남길 수 있다는 점은 누구나 잘 알고 있다. 특히 임신 16-18주에 실시하는 양수 검사는 산모의 배에 바늘을 찔러 양수를 빼내는 과정에서 태아를 건드릴 위험이 있으며, 천자 부위의 감염에 의하여 태아뿐만 아니라 임산부까지 사망할 수 있다. 그리고 실제로 대한 의학 협회에 보고된 산부인과 계통의 의료사고(1981-1982년) 가운데 임신기간 중에 발생한 62건 중 58건이 인공유산과 관련된 것이며, 이 중에 17건은 사망이었다.

또한 백보를 양보해서, 부작용이 없다 하더라도 유산은 산모에게 커다란 육체 및 정신적 상처를 남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나라 산아제한 계획은 이런 위험성에 대한 홍보를 전적으로 무시하고 무조건 장려만 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60년대 초에 기혼 여성 1천 명당 16명 정도에 불과했던 20-24세의 인공 유산 경험자가 최근에는 5.7배나 증가했으며, 전체 인공유산의 47퍼센트를 미산부가 차지하고 있으며, 미혼 여성도 전체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니까 10대 혹은 20대의 미혼녀(未婚女)와 비혼모(非婚母)가 차지하는 비율이 최근에 와서 부쩍 늘어났다는 증거이다. 여기서 미혼모란 원하지 않은 임신을 한 여성이며, 비혼모는 처음부터 결혼할 의사가 없으면서도 아이를 갖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임신한 여성을 말한다. 

 



 

 한국적인 너무나 한국적인 현상들

 

지금까지 지적한 우리 나라 낙태의 실태는 어느 정도 세계 공통의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우선 세계적으로 약 8억 이상의 여성이 매년 피임을 하고 있으며, 외국에서는 요즘 수술을 받지 않고 임신 중절을 시킬 수 있는 신약인 프랑스제 RU-486과 미국제 에포스테인이 개발돼 상당한 논란을 일으키고 있고, 프랑스와 중국은 이미 RU-486의 공식적인 사용을 허락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그리 신빙성이 높지 않은 어느 주간지는 화장품 회사들이 특수화장품의 원료로 사용하기 위하여 태아의 사체를 사들이고 있다고 보고하기도 했다.

그러므로 낙태에 나타난 생명 경시 풍조, 성윤리의 타락, 물질 만능주의, 이런 사상들을 은연중에 부추기는 구조적 모순 등은 세계 공통의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다른 경우와 마찬가지로, 낙태에 있어서도 우리 나라에서만 나타나는 특수한 현상들이 있다. 세계 어느 곳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없는 한국적인, 너무나 한국적인 현상들이 있다.

첫째, 낙태에 의하여 죽어가는 대부분의 태아는 남성이 아니라 여성이다. "아들을 낳으면 가족계획(산아 제한의 잘못된 표현)을 한다!"고 말할 정도로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아직도 남아 선호 사상이 뿌리 깊게 자리잡고 있다. 그래서 요즘 초등학교에 입학한 남학생이 여학생을 짝으로 배정받게 되면 "엄마, 내 짝 여자다!"라고 외치면서 마치 개선 장군처럼 의기 양양하게 되는데, 그만큼 남자보다 여자의 숫자가 적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 나라에서 여자는 태어나기 이전부터 이미 철저한 차별을 받는다. 태어난 다음에는 말할 것도 없다. 요즘 웬만한 가정에서는 미리 불법적인 양수 검사를 해서 남자들만 뽑아 내는 것을 거의 당연한 처사로 보는 풍조가 이를 잘 증명한다.

둘째, 피임에도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리듬에 의한 월경 주기법은 가장 자연적이고 확률이 높지만 사랑의 극치인 성을 산술적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는 약점을 가지고 있다. 또한 일회용 불임 수술은 가장 확실한 방법이지만 나중에 다시 출산을 원할 때 재수술을 해야 되는 난점을 가지고 있다. 또한 그 이외의 인위적 방법은 언제나 실패할 수 있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미국이나 일본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방법은 피임약, 루프, 폼으로 대표되는 인위적 방법이며, 그 중에도 비교적 확률이 높은 피임약을 사용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우리 나라 피임의 절대 다수는 일회용 불임 수술이다. 그리고 불임 수술을 받는 대상은 대부분이 남성이 아니라 여성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 나라 사람은 복잡한 방법보다는 단칼에 잘라 버리는 불임 수술을 절대적으로 선호한다. 그래서 미국이나 일본에서는 피임약이 계속 팔리지만 한국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제약 회사들이 불평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적인, 너무나 한국적인 현상이다.

셋째, 그러나 내가 가장 큰 한국적인 문제점으로 생각하는 것은 낙태가 이렇게 성행할 때까지 그것이 한번도 심각한 사회 문제로 등장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잘 알다시피 가톨릭에서는 낙태뿐만 아니라 리듬 방식에 의한 피임 이외의 모든 종류의 피임까지 금지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선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심각하게 고려해야 했었다. 피임은 과연 생리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정당한가? 그리고 그것이 정당하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의 피임이 가장 이상적인가? 주기에 의한 것인가? 루프에 의한 것인가? 폼에 의한 것인가? 또한 원하지 않는 임신을 했을 때는 낙태가 생리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정당한가? 낙태를 정당화시키는 조건은 무엇이며 정당화시키지 않는 조건은 무엇인가? 예를 들어서, 강간에 의한 임신은 언제나 낙태가 정당화될 수 있는가?

선진 외국에서는 벌써 오래 전부터 "낙태는 살인이다"라는 주장과 "낙태는 이혼과 마찬가지로 선택적인 행위일 뿐이다"라는 주장이 팽팽히 맞서서 각계 각층의 사람들이 심각하게 토론했으며, 이런 토론은 지금도 강렬하게 진행되고 있다.

특히 1973년의 '로우 대 웨이드'의 판결로 대법원이 사실상 낙태를 합법화시켰던 미국에서는, 이 역사적인 판결이 나온 지 16년이 되는 1989년 7월 3일 대법원이 다시 격론 끝에 주 정부에 임산부의 낙태를 제한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함으로써 낙태 반대론자들에게 "부분적인 승리"를 안겨 주기도 했다. 하여간 생명론자(life-severs)와 선택론자(life-choicers)-혹은 생명 우선론자(pro-lifes)와 선택 우선론자(pro-choicers) -의 논쟁은 아직도 뜨겁게 진행되고 있다.

희랍 철학자 프로타고라스가 말했듯이 모든 문제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신이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고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므로 피임과 낙태에 대해서도 분명히 찬반 양론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찬반 양론의 토론이 완전히 생략된 상태, 이야말로 희한한 일이 아닌가? 역사는 빨리 진행될 수도 있으며 늦게 진행될 수도 있다. 그러나 건너 뛸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이 토론의 과정을 완전히 생략하는가?

나는 앞에서 한국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상황으로 세 가지를 들었다. 그중에서 여자가 남자보다 태어나기 힘들게 된 첫번째 경향은 오랫동안 우리 나라에 내려온 남아 선호 사상 전통의 책임이며, 일회적인 불임 수술을 선호하는 두 번째 경향은 당국의 결과 제일주의 정책에 책임이 있다고 나는 믿는다. 그러나 피임과 낙태의 문제를 생명 외경 사상과 연결하여 한번도 심각하게 토론하지 않았다는 이 엄청난 사실을 나는 전혀 이해할 수 없다.

특히 우리나라는 옛부터 슈바이처의 생명 존중 사상 이상으로 인간의 탄생을 중요시했으며, 최근까지만 해도 피임이란 천도(天道)를 거역하는 행위로 보았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사람은 제 먹을 가지고 태어난다"고까지 말했었다. 그런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그러면 우리는 왜 피임과 낙태의 문제(특히 낙태의 문제)를 심각하게 토론해야 되는가? 그 이유는 한마디로 우리가 전체주의 국가가 아니라 민주주의 국가에 사는 시민으로서의 "개인의 자율성"을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어떤 이념이나 실용적인 이유를 내세워서도 어떤 단체나 국가도 나의 삶을 결정할 수 없다는 개인의 자유를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이 점은 베어드와 로젠바움이 편한 「낙태의 윤리」라는 책에 쓴 '서문'에 잘 지적되어 있다. 그 내용을 그대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생략)

 



 

 이 책을 펴낸 세 가지 이유

 

현대인은 흔히 모든 문제를 실용성 및 효용성 측면에서 결정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상의 긴 인용문이 제시하듯이 낙태의 문제는 단순히 이런 차원에서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실용성보다 이념성, 효용성보다 실존적 가치를 먼저 고려해야 되는 문제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 낙태 수술은 통상 11주 이내와 이후를 구별해서 각기 다른 방법을 사용한다. 우선 임신 10주까지의 경우에는 음압을 이용하여 태아를 분해 . 해체하는 지극히 물리적인 방법을 사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임신 11주 이상이 되는 경우에는 제왕 절개 수술과 같이 자궁 절개 수술을 통해 살아 있는 태아를 끄집어내는 방법을 사용하기도 하고 태아를 양물의 중독으로 죽이는 방법을 사용하기도 한다. 후자의 경우에는 거의 사람의 형체를 읽을 수 있으며, 태아의 성별까지도 확실히 구별할 수 있다.

이런 낙태 수술일진대, 우리가 어떻게 "낙태는 살인인가?"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물론 우리는 이 질문의 답변으로서, 낙태는 엄연한 살인이라는 결론을 얻을 수도 있고, 낙태는 그저 쓰레기 청소와 다름이 없다는 결론을 얻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질문 자체를 생략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것이 이 책을 펴낸 첫번째 이유이다.

물론 우리 나라에서도 낙태를 주제로 한 심포지엄이 열린 적이 있었다. 그러나 여기에 참석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의사와 법률가였다. 그러나 낙태가 어찌―만약 그것이 실용적이면서도 이념적 혹은 실존적 문제라면―단순한 의학적, 법률적 차원으로만 끝날 수 있겠는가? 사랑, 순결, 성, 낙태, 안락사, 성타락, 성일탈 등과 같은 문제들은 의학, 법률, 심리학, 윤리학, 인간학, 철학 모두의 문제이다. 그래서 나는 이 책에서 낙태에 대한 철학적 논의를 제공하려고 한다. 이것이 이 책을 펴낸 두 번째 이유이다.

일반적으로 지금까지의 낙태 문제에 대한 토론은 주로 종교적, 의학적, 법적 측면에서만 진행되어 왔다. 그리고 종교인들은 "태아=인간"이라는 도식만 받아들인다면 자연히 생명론자의 승리가 보장된다고 생각했으며, 의사와 법조인은 임신의 어느 시기에 "태아=인간"의 도식이 성립하느냐에 온 신경을 쏟아 왔다. 그러나 낙태 문제에 대한 토의는 이제 그 영역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특히 철학적인 영역으로 확대될 필요가 있다. 그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한마디로 우리는 태아가 임신의 순간부터 인간이 된다는 위의 도식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그 전제로부터는 낙태가 비윤리적이라는 결론은 나오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런 주장을 한 철학자의 대표로는 이 책에 글이 실린 톰슨 교수를 들 수 있다.

또한 우리는 나와 반대되는 의견을 가진 사람의 장점을 볼 수 있어야 한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길을 신중히 고려해야 한다. 생명론자는 선택론의 장점을 읽을 수 있으며 선택론자는 생명론의 장점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그리하여 여성 해방론자인 해밀턴은 "무엇이 선택되지 않고 남아 있는가?"라는 질문을 심각히 제기해야 된다고 말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이 책을 어느 한쪽의 결론을 유도하는 방향으로 만들지 않고, 가능하면 정반대되는 결론을 지지하는 논문들을 번갈아 가면서 삽입했다. 낙태에 대한 객관적 입장의 접근, 이것이 이 책을 펴낸 세번째 이유이다.

나는 이 책을 펴내면서 동료 교수로부터 들은 말을 여기서 상기한다. 그는 이 책이 잘 팔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글쎄, 누가 그 책에 관심이나 가질까? 현재 모든 사람이 아무런 죄책감도 없이 낙태를 물마시듯이 하고 있는데."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이제 우리의 삶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산아 제한 문제와 낙태 문제에 대하여 나와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 그런데 현재까지 우리나라에서는 남의 의견을 듣기는커녕 그 문제 자체를 심각하게 토론조차 하지 않았다. 오늘날 우리는 이 "생략된 질문"을 되찾아야 한다. 우리가 진정 민주 시민으로 사람답게 살려면.

끝으로 황필호의 "철학적 여성학 시리즈" 제2권으로 나가는 이 책이 생략된 질문을 회복하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이 시리즈의 제1권은 「철학적 여성학」(종로서적, 1986년 초판)이었다. 제3권으로는 현재 「성과 순결, 그리고 여성 운동」(가제)을 준비하고 있다.

 



 

==================================== 차 례 =======================================

1. 생략된 질문 -머리말을 대신하여/ 황필호(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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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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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적인 너무나 한국적인 현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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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펴낸 세 가지 이유-

제1부 산아 제한, 어떻게 볼 것인가

 2.「산아 조절에 관한 회칙」/ 교황 바오로 6세(21)
 3. 성, 산아 제한, 「산아 조절에 관한 회칙」/ 칼 코헨(42)
 4. 끝나지 않은 과업
 -산아 제한과 여성 해방/ 루시아나 시슬러(61)

제2부 낙태, 어떻게 볼 것인가

 5. 태아의 인간성과 본질주의 이론/ 바루치 브로디(89)
 6. 낙태의 변호/ 주디트 잘비스 톰슨(107)
 7. 낙태에 대한 톰슨 교수의 견해/ 바루치 브로디(132)
 8. 낙태와 유아 살해/ 마이클 툴리(140)
 9. 낙태와 황금률/ R.M. 헤어(171)
10. 인격체라는 개념은 낙태와 어떤 관련이 있는가/ 로렌 E. 로마스키(194)
11. 낙태를 옹호하는 서양 철학의 조류들/ 도날드 드마르코(211)
12. 낙태 논쟁은 향상될 수 있는가/ 다니엘 캘라한(232)

부록1: 낙태에 관련된 판례들(251)
부록2:
'로우 대 웨이드'의 대법원 판결문
 -주 정부 낙태법에 대한 1973년의 결정(요약)(253)
부록3:
낙태 문제에 휘말린 대법원/ 뉴욕 타임즈(265)

13. 여자의 일생/ 맺음말을 대신하여(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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