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우 대 웨이드'의 대법원 판결문 『주 정부 낙태법에 대한 1973년의 결정』


블랙먼(Harry A. Blackmun) 대법관의 대법원 의견

우리는 이 자리에서 낙태 문제의 감성적 . 감정적인 속성, 의사 중에서까지 맹렬히 서로 반대되는 견해들, 그리고 이 문제가 제기하는 깊고 절대적으로 보이는 신념들을 잘 인식하고 있다. 자신의 철학, 자신의 경험, 인간 존재의 위기에 대한 자신의 경험, 자신의 종교적 훈련 과정, 삶과 가정과 그들의 가치에 대한 자신의 태도, 자신이 설립하고 실천하려는 도덕적 기준이 모두 낙태에 대한 생각과 결론에 영향을 주거나 왜곡시킬 수 있다.

더 나아가서 인구 증가, 공해, 가난, 인종 차별은 이 문제를 단순화시키기는커녕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

그러므로 우리의 임무는 어떤 감정이나 편애에 사로잡히지 말고 이 문제를 헌법의 기준으로 해결하자는 것이다.

텍사스 주의 달라스에 거주하는 미혼녀인 제인 로우(Jane Roe)는 1970년 3월에 달라스 시를 상대로 이 소송을 제기했다. 그녀는 텍사스의 낙태법이 그 자체로 위헌이며 또한 텍사스 주 정부가 이 법을 집행하지 못하게 하는 금지령을 내려 달라고 요구했다.

로우는 그녀가 미혼이면서 임신을 했으며, "의학적으로 안전한 상태에서 면허를 가진 실력 있는 의사를 통하여" 낙태로 임신을 중단시키기를 원하며, 그녀의 지속적인 임신이 그녀의 삶을 위협한다고 볼 수 없다는 이유로 텍사스 주 정부에서는 "합법적"인 낙태를 받을 수 없으며, 안전한 조건에서 합법적인 낙태를 받기 위해 다른 지역으로 여행시킬 경비도 없다고 말했다. 그녀는 텍사스의 법률이 헌법적으로 모호하며, 헌법의 제1수정안, 제4수정안, 제5수정안, 제9수정안과 제14수정안이 보장하고 있는 그녀의 사생활권(the right of personal privacy)을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로우는 "그녀와 또 그녀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모든 여성"을 위하여 고소를 제기한다고 말했다.

텍사스 법률에 대한 고소인의 공격의 주된 요점은, 그것이 임신한 여성이 임신을 중단하도록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부당하게 침해한다는 것이다. 고소인은 이 권리를 제14 수정안의 경과 규정(Due Process Clause)에 나타난 개인의 "자유"의 개념과 권리장전(Bill of Rights)이 보호하고 있는 성적인 개인권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오늘날 미국 대부분의 주에서 통용되고 있는 낙태 제한 법률은 비교적 최근에 제정된 것이라는 점이 일반적으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산모의 생명을 보호하는 데 필요하지 않은 낙태나 낙태의 시도를 금지하는 이 법률은 고대법이나 관습법에서 유래된 것이 아니다. 대부분이 19세기 후반의 시행령 변경에서 유래된 것이다.


관습법에서는 태동 - 대개 임신 16-18주에 나타나는 자궁내 태아의 인식할 정도의 움직임 - 이전의 낙태는 고소받을 범죄가 아니었다.

움직이는 태아의 낙태가 관습법에서 중죄인지 혹은 조금 낮은 범죄인지는 아직도 논란이 되고 있다. 그러나 관습법 선례에 대한 최근의 연구는 태동 이후의 낙태까지도 관습법에서는 범죄가 아니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미국 헌법이 제정될 당시로부터 19세기에 이르기까지의 관습법에서, 낙태는 오늘날 대부분의 미국 법률에서보다는 그리 나쁜 것으로 여기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하다. 다른 말로하면, 당시의 여성은 오늘날의 여성보다 임신을 중단시킬 수 있는 더욱 광범위한 권리를 행사하고 있었다. 임신의 초기나 혹은 이런 시간 제한이 없는 낙태권의 기회는 이 나라에 19세기까지 존속하고 있었으며, 그 이후에도 임신 초기의 낙태에 대하여는 오늘보다 더욱 관대했던 것이다.

낙태 금지법이 제정되고 계속 효력을 발휘하는 역사적 이유로는 세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 이 법률은 부정한 성행위를 위축시키려는 빅토리아 시대의 사회적 관심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의 텍사스 사건은 이것을 이유로 내세우지 않고 있으며, 오늘날에는 어느 법정이나 법률 해석가들도 이 이유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둘째, 그 다음에는 낙태가 의학적인 과정이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낙태 금지법이 제정되었을 때, 낙태는 여성에게 위험한 일이었다. 특히 소독법이 발전되기 이전의 낙태는 굉장히 위험한 일이었다. 소독 기술은 리스터(Lister), 파스퇴르(Pasteur), 1867년 처음 소독 기술을 발표한 다른 과학자들의 발견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러나 금세기 초까지도 널리 이용되고 있지는 않았다. 그래서 낙태 사망률은 높았고, 1940년도 항생제가 발명될 때까지,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소파술 -자궁을 확장시켜서 태아를 자궁벽으로부터 제거하는 수술 -도 오늘날같이 그리 안전한 방법이 아니었다. 그래서 이 법률은 임산부의 생명을 위험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제정되었다는 것이다.

현대 의학 기술은 이런 상황을 완전히 변경시켰다. 소송인과 법정 참고인은 임신 3개월 이전의 낙태는 위험성이 전혀 없지는 않지만 비교적 안전하게 되었다는 의학 보고서를 지적한다. 오늘날 초기에 낙태를 하는 임산부의 사망률은 -그들이 합법적인 낙태를 하는 경우에는 - 정상분만과 비슷하거나 더욱 낮다. 그래서 낙태를 하지 않는 데서 오는 위험률이 하는 데서 오는 위험률과 비슷한 경우를 제외한 모든 경우에, 여성을 낙태의 위험에서 구출하기 위한 금지법의 필요성은 사라지고 말았다. 물론 건강과 의학적 수준을 유지하려는 주 정부의 의도는 그대로 유지되어야 한다. 그래서 주 정부는 다른 의학적인 과정과 마찬가지로 낙태가 환자의 최대 안전 속에서 수행되도록 확인해야 한다. 수술을 집행하는 의사와 그의 조수들, 수술 시설, 수술 이후 관리의 문제, 응급 사태에 대비한 적절한 조치에 대하여 확인해야 한다. 그러므로 불법적인 "낙태 공장"에서의 사망률은 이러한 낙태 수술의 제 조건을 감독하는 주 정부의 이익을 강화시키기는커녕 오히려 약화시킨다. 더구나 임신이 지속될수록 여성에 대한 위험은 증가한다. 그래서 특히 임신의 늦은 단계에 실시되는 낙태의 경우에는 주 정부가 여성의 건강과 안전에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셋째, 주 정부는 출생 이전의 생명을 보호할 이익 - 혹은 의무 -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주장은 새로운 인간 생명은 임신의 순간부터 시작된다는 이론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래서, 주 정부는 출생 이전의 생명에 대한 이익과 일반적 의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오직 태아의 생명이 산모의 생명에 동일한 위험을 줄 때만 태아의 생명이 우선권을 갖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물론 논리적으로 볼 때, 이 경우에 주 정부의 이익은 생명이 임신의 순간부터 발생하거나 그 후에 발생한다는 신념에 의하여 좌우될 필요는 없다. 오직 "가능한 생명"(potential life)에 대해서도 주 정부는 임산부만 돌보지는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낙태법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이 법률의 목적이 출생 이전의 생명을 보호하는 것이라는 주장에 강력히 반대해 왔다. 이런 법적인 선례가 없다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그들은 이 법률의 목표가 오직 여성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 그래서 의학이 발달한 현재에 있어서, 적더오 임신 초기의 낙태는 이상의 주 정부 이익으로는 정당화 될 수 없다고 말한다. 이러한 법률의 목적에 대하여는 일부의 학자들도 동의하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의 낙태법이 태아의 보존보다는 산모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헌법이 사생활권을 명백히 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이 법정은 1891년의 '태평양 철도 회사 대 보츠포드'(Union Pacific R. Co. vs. Botsford)의 판례에 따라서, 헌법에 사생활권이나 사생활의 영역에 대한 보장이 있다고 인정한다. 그래서 이 법정이나 일부의 대법관은 이 권리를 제1수정안, 제4수정안, 제5수정안, 제9수정안, 제14수장안의 제1항에 보장된 자유의 개념에서 찾았다. 그리고 이러한 발견은 가장 "본질적"이거나 "보장된 자유의 개념에 함유"된 개인권(personal rights)만이 이 사생활권의 보장에 포함되며, 여기서 말하는 권리는 결혼, 생식, 피임, 가족 관계, 자녀 양육과 자녀 교육의 행위까지 연장된다는 사실을 확인해 주었다.

사생활권은 - 그것이 이 법정이 보는 대로 제14수정안이 가지고 있는 개인 자유의 개념과 그 자유에 대한 주 정부의 제한 조건에 근거를 두고 있든지 혹은 지방 법원이 보는 대로 제9수정안에 있는 다른 사람의 권리에 근거를 두고 있든지간에 - 여성이 임신을 중단시키느냐 하지 않느냐는 문제까지 포함할 정도로 광범위하다. 주 정부가 이 선태권을 부여하지 않는 데서 오는 손실은 명백하디 임신 초기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구체적이며 직접적인 해독은 물론이며, 임신 기간과 추가로 탄생한 자녀는 여성에게 슬픈 삶과 미래를 줄 수 있으며, 심리적인 해독은 당장 당하는 것이다. 또한 자녀 양육을 하느라고 정신적, 육체적 건강을 잃을 수도 있으며 원치 않은 아이의 출생에 관련된 모든 사람들의 슬픔도 있으며, 이미 심리적으로나 다른 이유로 자녀를 정상적으로 양육할 수 없는 집안에 또 다른 아이를 낳게 하는 문제도 있다. 또한 다른 경우에는 미혼모라는 사실에서 오는 추가의 난점과 지속적인 고통이 있을 수도 있다. 여성과 그녀의 의사는 모든 요소들을 고려해야 한다.


이런 요소들에 근거하여 소송인과 참고인은 여성은 어떤 시기, 어떤 방법, 어떤 이유에 의해서도 마음대로 임신을 중단시킬 수 있는 절대적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 법정은 이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텍사스 주 정부가 낙태 결정을 규제할 아무런 이익도 없으며 또한 여성 자신의 결정을 제한할 수 있을 정도의 이익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소송인의 논증은 설득력이 없다. 사생활권을 인정하는 이 법정은 동시에 그 권리에 의하여 보호된 영역에 대한 어떤 주 정부의 규정은 정당하다고 본다. 이미 말했듯이 주 정부는 건강 유지, 의학적인 수준의 유지, 가능한 생명의 보호에 대한 중요한 이익을 주장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예상되는 이익이 임신의 어느 시기에는 낙태 결정을 규제하지 않을 수 없는 상태가 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사생활권은 절대적일 수 없다. 실제로 자신의 육체에 대하여 무제한적인 권리(an unlimited)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사생활권에 대한 과거 대법원의 선례와 유사하다는 소송 대리인의 주장은 확실하지 않다. 이 법정은 과거의 이런 무제한적인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우리는 사생활권이 낙태 결정을 포함하고는 있지만, 그 권리가 무제한적이지는 않으며, 그래서 그 권리는 낙태를 규제하는 중요한 주정부의 이익에 대비되어 고려되어야 한다고 결론을 내린다. 동시에 우리는 낙태법 도전을 최근에 심의한 지방 법원들 및 대법원도 동일한 결론을 내렸다고 믿는다.

비록 의견의 일치는 보지 못했으나 이 법정의 대부분 대법관들은 사생활권이 - 그것이 어디에 근거하고 있든지간에 - 낙태 결정을 포함할 정도로 광범위하며, 그러나 절대적이지는 않기에 어떤 제약을 받아야 하며, 어느 경우에는 건강과 의학적 수준과 출생 이전 생명을 보호하려는 주 정부의 이익이 우선되어야 함에 동의했다.

피고인과 그의 참고인은 태아가 제14수정안의 언어와 의미에 있어서 "인간"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그들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잘 알고 있는 태아의 발달 과정을 상세히 설명한다. 만약 이 주장이 옳다면, 제14수정안의 보장하는 생명권(right to life)은 태아에게도 해당되며, 이렇게 되면 고소인은 당연히 패배하게 될 것이다. 하여간 이런 경우에 고소인은 새로운 논증의 필요성을 인정했다. 동시에 피고소인은 태아가 제14수정안의 언어에 담긴 뜻에서 인간이라는 주장에 대한 어떤 선례도 인용할 수 없음을 인정했다.

헌법은 "사람"을 여러 가지 언어로 정의하지 않았다. 제14수정의 제1부는 "인간"에 대하여 세 번 언급한다. 첫째, "시민"을 규정하면서 "미국에서 출생했거나 귀화한 사람"이라고 언급하며, 둘째는 경과규정과 보호규정(Equal Protection Clause)에 나오며, 세 번째는 하원 의원과 상원 의원의 자격을 규정하는 제1장의 제2절, 제2구와 제3절 제3구; 임명 구절인 제1장 제2절 제3구 ; 거주 이동과 수입 품목을 규정하는 제1장 제9절 제1구 ; 급여 구절인 제1장 제9절 제8구 ; 선거인단을 규정하는 제2장 제1절 제2구와 제3구 ; 대통령의 자격을 규정하는 제2장 제1절 제5구 ; 타국 송환을 규정하는 제4장 제2절 제2구와 망명자 구절인 제3구 ; 제14수정안의 제2절과 제3절 뿐만 아니라 제5, 제12, 제22 수정안에도 나온다. 그러나 이 모든 경우에 "사람"이라는 단어는 출생 이후의 인간에게만 적용되며, 출생 이전의 경우를 확실히 지시하는 경우는 한군데도 없다.


이러한 점과 이미 앞에서 언급한 사실 - 대부분의 19세기에 나오는 현재보다 훨씬 자유롭게 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제14수정안에 사용된 "사람"은 출생하기 이전의 태아를 포함하지 않음을 지적한다.

우리는 여기서 언제 생명이 시작되느냐는 어려운 문제를 해결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의학, 철학, 신학의 전문가들이 어떤 일치점을 발견하지 못한 현재 인간 지식의 단계에서, 사법부는 이 문제를 해결할 위치에 있지 않다.

단지 우리는 여기서 이 감정적이고 어려운 문제에 여러 가지 상인한 견해가 있음을 지적하겠다. 실로 탄생 이전에는 생명이 시작하지 않는다는 견해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강력한지지가 있어 왔다. 이것이 바로 스토아 철학가들의 견해였다. 그리고 이것은 만장 일치는 아니었더라도 유대교 신앙의 주된 조류였으며, 개신교의 많은 사람들이 지지했으며, 낙태에 대한 구체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는 단체들은 낙태를 개인과 가정의 양심의 문제로 간주했다. 앞에서 지적한 대로, 관습법은 태동을 중요시했다. 그러나 의사와 과학자들은 이 태동을 별로 흥미 없는 사건으로 보았으며, 오히려 그들은 임신의 순간이나 탄생시나 태아가 생존 가능(viable)한 중간 지점-인위적인 협조만 있으면 어머니의 자궁 밖에서도 살 수 있으리라는 중간 지점 - 에 관심을 두었다. 생존 가능성은 대개 7개월(28주)에 발생하지만 그 이전에 발생할 수도 있고, 어느 경우에는 24주에 발생할 수도 있다. 가톨릭은 중세와 르네상스까지 "중간 생명체 이론"(theory of mediate animation)을 지지했으나, 19세기부터 생명은 임신의 순간부터 시작한다는 "영혼 탄생 이론"(the ensoulment)을 채택했는데, 이것이 오늘날 가톨릭의 공식적인 견해가 되었다. 어느 참고인이 진술했듯이, 이 견해는 비 가톨릭 교인과 의사들 중에도 지지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이 견해에 대한 정확한 정의는, 첫째로 임신이 어떤 사건(event)이 아니라 지속적인 과정(process)이라는 발생학적인 견해와, 둘째로 월경 축출, 피임약, 태아 이식, 인공 수정, 인공 자궁 등과 같은 새로운 의학적 기술에 의하여 정확히 밝힐 수 없다.

또한 낙태 금지 이외의 다른 분야의 법률도 탄생 이전에 생명을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어느 아이가 탄생된다는 전제 아래 부여되는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아직 출생하지 않은 아이에게 법적인 권리를 부여하지 않고 있다. 예를 들어서 전통적인 불법 행위법(tort law)의 원칙도 - 비록 아이가 살아서 출생한 경우에도 - 출생 이전의 상처에 대한 회복권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 원칙은 이제 거의 재판에서 변경되었다. 그리하여 오늘날 대부분의 주 정부는 생존 가능하거나 적어도 움직이는 태아가 상처를 입었을 때는 회복권을 허용하고 있다. 물론 정면으로 이렇게 주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최근 일부의 주 정부는 출생 이전의 상처에 의하여 사산된 아이의 부모는 과실 치상의 소송을 허락했다. 그러나 이런 조치는 결국 사산된 아이보다는 부모의 이익을 대변하는 듯이 보이며, 이런 점에서 태아는 생명 자체가 아니라 생명의 가능성만을 나타낸다는 견해와 일치한다. 또한 아직 탄생하지 않은 아이들도 상속이나 재산 위탁에 의하여 권리나 이익을 인정받게 되었으며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후견인이 대표할 수도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이익의 완성은 어디까지나 살아서 출생된다는 전제를 가지고 있다. 한마디로, 법률은 아직 출생하지 않은 아이를 완전한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을 참작해서 우리는 텍사스 주가 어느 한 가지 생명론을 채택함으로써 위험에 처함 임산부의 권리를 압도(override)할 수 있다고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주 정부가 임산부의 - 그녀가 텍사스 주민이든지 혹은 다른 주민으로 의학적인 상담과 치료를 요청하든지간에 - 건강을 보존하고 보호할 중요한 법적 이익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반복한다. 그리고 인간 생명의 가능성을 보호할 또 다른 중요한 법적 이익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반복한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이익은 서로 떨어져 있으며 동일하지도 않다. 다만 그들은 임산부가 출산일로 - 혹은 적어도 "저항하기 어려운 시기"로 - 접근할수록 더욱 중요하게 된다.

산모의 건강에 대한 주 정부의 중요한 합법적 이익과 관련하여, 현재의 의학적 기술을 기준으로 보아서 이 "저항하기 어려운 시기"는 대개 임신 3개월 말로 본다. 이때까지 낙태에 의한 사망률은 정상적인 분만의 경우보다 낮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시기가 지난 다음에 주 정부는 산모의 건강을 유지하고 보호하는 차원에서 낙태 수술을 규제할 수 있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규제는 낙태 수술을 행하는 의사의 자격 요건, 그 사람의 의료업 허가증, 병원이나 진찰실이나 병원보다 낮은 단계의 수술실과 같은 낙태 수술의 시설 장소, 그 장소의 수술 허가증 등을 포함한다.

이와 반대로 이 시기 이전의 임신의 경우에는 주 정부의 규제를 받지 않고 의사가 환자와 상의하여 임신을 마음대로 중단시킬 수 있다. 그리고 이 결정은 주 정부의 방해를 받지 않고 낙태로 실천될 수도 있다.

가능한 생명에 대한 주 정부의 중요한 합법적 이익에 대하여, 이 "저항할 수 없는 시기"는 생존 가능성이 된다. 이 경우의 태아는 산모의 자궁을 떠나서도 의미있는 생명을 가질 수 있다고 추측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생존가능성 이후의 태아의 생명을 보호하려는 주 정부의 규제는 논리적 및 생물학적 정당성을 갖는다. 그리하여 주 정부는 산모의 건강이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하여 필요한 경우 이외의 낙태를 이 시기 이후에는 금지할 수도 있다.

지금까지의 내용을 요약하고 반복하면 다음과 같다.

현재 텍사스에서 실시되고 있는 것과 같은 주 정부의 낙태 금지법 - 산모의 생명을 구조하는 경우 이외에는 전부 범죄로 보는 낙태 금지법 -은 임신 상태와 다른 이익들과 상충되지 않는 한, 제14수정안의 경과 규정에 위배된다.

대개 임신 3개월 말 이전의 낙태와 낙태 수술은 산모를 치료하는 의사의 의학적 판단에 맡겨야 하기 때문이며, 대개 임신 3개월 말 이후에는 주 정부가 산모의 건강에 대한 이익을 증진시키기 위하여 낙태 수술을 규제할 수 있으며, 생존 가능성 단계 이후에는 주 정부가 인간 생명의 가능성에 대한 이익을 증진시키기 위하여 - 산모의 건강이나 생명 보존에 필요한 경우를 제외한 - 낙태를 선택하고 규제하고 금지까지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법관 화이트(White) . 대법관 렌퀴스트(Rehnquist)의 소수 의견

이 두 사건에 얽힌 논쟁의 초점은 산모의 건강이나 생명에는 아무런 위험을 주지 않으나 편리함, 가족계획, 경제, 자녀에 대한 혐오감, 서장에 대한 불법성 등의 이유로 원하지 않는 반복되는 임신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고소인은 이상의 어느 한 가지 이유나 또는 아무런 이유가 없어도 - 그리고 산모의 건강이나 생명에 대한 위협이 없어도 - 모든 여성은 낙태 수술을 해줄 의사만 발견할 수 있다면 스스로 낙태를 결정할 자격이 있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에 대하여 대법원의 입장은 이렇다. 태아가 생존 가능하기 이전에 있어서, 미국 헌법은 태아의 가능한 생명보다는 어머니가 될 수 있다고 추정되는 산모의 편리함, 변덕, 일시적 기분을 더욱 중요하게 여긴다. 그러므로 헌법은 산모의 더욱 절박한 이유가 없는 한, 태아를 낙태로부터 구원하려는 주 정부의 법률이나 정책에 반대해서 낙태권을 보장한다.

나는 이상의 입장에 반대한다. 나는 이런 대법원의 판결을 지지하는 언어나 역사를 헌법에서 발견할 수 없다. 여기서 대법원은 단순히 산모에게 새로운 헌법적 권리를 만들어서 선포한 것이며, 아무런 이유나 권위의 뒷받침도 없이 이 새로운 권리에게 현행 낙태법을 취소시킬 수 있는 실체를 제공한다. 그 결과로 미국 50개 주의 국민과 주 의회의원은 한편으로는 태아의 지속적인 존재와 발달에 대한 상대적인 중요성을 저울질하는 헌법적인 권리를 박탈당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산모에게 미칠 가능한 결과의 수준을 저울질 할 수 없게 되었다. 물론 특수한 사법권의 발휘로 대법원은 이런 판결을 내릴 권한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판결은 헌법이 대법원에 부여한 사법권의 경솔이며 지나친 행사라는 것이 나의 견해이다.

대법원은 확실히 산모가 가지고 있는 생명이나 가능한 생명의 지속적인 존재와 발달보다는 산모의 편리함을 더욱 중요시했다. 내가 이런 가치 판단에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간에, 나는 절대로 대법원의 판결에 참여할 수 없다. 주 정부의 국민과 의원들에게 대법원이 이런 우선 순위를 부여할 수 있는 헌법적인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합리적인 사람들이라면 당연히 쉽게 - 그리고 정열적으로 - 의견을 달리할 수밖에 없는 감정적인 문제에 있어서, 인간 생명을 보호하려는 주 정부의 노력에는 헌법적인 제어를 하고 산모와 의사에게는 임신을 중단시킬 수 있는 권리를 헌법적으로 부여하는 특별한 선택권을 대법원이 가지고 있다는 점을 나는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 문제는 대부분의 경우에 국민과 국민의 일상사를 관장하도록 고안된 정치 과정에 맡겨 두어야 한다.

그러므로 텍사스의 법률은 헌법적으로 허약하지 않다는 것이 나의 견해이다. 그것은 건강이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편리함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만 낙태를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판례는 황필호 편,『산아제한과 낙태와 여성해방』, 종로서적, 1990에서 발췌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