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강문, 『'낙태의 뿌리'를 수술하자』, 한겨레 21, 126('96.9.19), p.42


- 남아선호 등 의식 . 제도 개혁돼야 불법 성감별 사라져 -

지난 3월 대한의사협회는 산부인과 의사 김아무개(40)씨의 회원자격을 1년 동안 정지시켰다. 서울 강동구 암사동에서 개업의로 일하고 있는 김씨가 태아의 성을 감별해준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회원 자격정지 1년은 의사협회 정관에 규정된 회원 징계 가운데 가장 무거운 것으로, 의사협회 창립 이래 두 번째라고 한다. 당시 의사협회는 "윤리위원회의 조사 결과 김씨가 태아 성감별을 통해 임산부에게 태아의 성이 여자라는 사실을 알려준게 인정됐다"고 밝혔다.

 - 산부인과 의사의 경제적 이득과 직결 -

우리나라에서 태아의 성감별을 위한 의료행위는 이른바 가족계획사업의 진행과 함께 도입됐다. 1962년부터 시작된 가족계획사업으로 '낙태의 필요성'이 강조됐기 때문이다. 낙태는 1973년 제정된 모자보건법에서 합법화되면서 급속도로 확산됐다. 정부는 이에 1987년 의료법(19조 2항)을 개정해 태아의 성감별을 목적으로 한 의료행위를 금지하고, 이를 어겼을 경우 의사면허를 취소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을 신설했다. 그러나 이 조항은 처벌에 대한 선언규정에 그쳐 곧 유명무실해지고 만다. 정부는 마침내 지난 94년 의료법 67조를 개정해 19조의 2를 어겼을 경우 3년 이하의 징역이나 1천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리도록 처벌을 강화한다.

그러나 이런 법적 규제에도 태아 성감별은 여전히 성행하고 있다. 사실 태아 성감별이나, 이를 통한 낙태는 의사와 임산부 사이에 음성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실태조차 파악하기 힘들다. 남자아이를 낳으려는 임산부쪽의 의지가, 의사의 경제적 이득으로 직접 이어지기 때문이다. 산부인과 최아무개(41)씨는 "개인적으로 낙태에 반대해, 태아 성감별과 낙태시술을 중단했더니 수입이 한동안 이전의 절반으로 뚝 떨어졌다"고 말한다. 최씨는 새로운 자궁암 검진방법을 도입하고, 첨단 초음파 검사장비를 들여오는 등 여성클리닉을 활성화하고서야 예전의 수입을 되찾을 수 있었다.

의학계에선 태아의 성감별 자체를 반사회적이거나 비윤리적이라고 볼 수는 없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출산을 앞둔 임산부에겐 태아의 성별을 미리 아는 것이, 출산준비를 하는 데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도 있다는 것이다. 태아의 성감별을 무작정 법으로 규제하는 게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라는 점이 여기서 나타난다. 김일수 교수(고려대 법학)는 "태아 성감별 행위는 이것이 낙태의 준비단계로 행해지기 때문 법적 처벌의 대상이 된다"고 강조한다. 그는 일반적인 태아성감별에 대해선 "의학협회나 산부인과학회 차원의 자율적인 규제가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태아 성감별 행위에 대한 판단은 기본적으로 윤리에 기대야 한다는 얘기다.

 -고령층에 대한 설득작업 중요-

태아 성감별을 통한 낙태는 우리 사회의 뿌리깊은 남아선호 풍조에서 기인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출생성비는 1991년 112.9에서 1993년 115.6으로 높아졌다. 출산순위별로 보면 셋째 아이 이상에서 거의 2배 가까운 성비 불균형이 나타난다. 93년의 경우 출생성비는 첫째 아이가 106.6이었으나 둘째 아이 114.9, 셋째 아이 206.5로 높아졌다. 셋째 아이만큼은 기를 쓰고 남자아이를 낳으려고 하는 것이다. 특히 최근 들어 이런 출생성비의 불균형이 연간 출생수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둘째 아이에서도 강화되고 있어 심각성을 더한다.

이 때문에 불법적인 태아 성감별을 막기 위해선 의식개혁과 제도개혁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특히 성감별에 의한 낙태가 임산부 본인보다는 시부모의 압력에 의한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이들 고령층에 대한 설득작업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여성의 사회참여를 촉진하기 위한 제도를 정비하고, 미혼모에 대한  사회적 보호를 강화할 필요도 점점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