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우,『왜 강남엔 남자아이가 많을까』, 한겨레 21, 126('96.9.19), pp.36∼38


- 성감별 낙태, 일부 고학력, 고소득 집단 주도 -

"주로 어떤 사람들이 아들을 골라 낳는 거죠?"

건설회사 과장인 윤아무개(37)씨는 대뜸 반문부터 시작했다. 그는 최근 회사 각 부서에서 차출된 동료 3명과 넷이서 해외출장을 다녀왔는데 모두가 공교롭게도 딸만 둘인 '딸딸이 아빠'였다는 것이다. "남자가 많다고 난리라는데 도대체 누가 아들을 많이 낳은 거야?" "이번 출장은 '능력없는 아빠'들만 뽑은 거 아냐"라는 농담 끝에 이야기는 "요즘은 첫애가 딸이면 둘째는 다 골라 낳는다는 거야. 재산 없고 아무생각 없이 사는 사람들이나 생기는 대로 낳는거야"라는 쪽으로 모아졌다. 한 동료는 '아들이란 확실한 보장만 있다면' 늦동이 아들을 볼 생각이 있다고 털어 놨다. '보장'이란 성감별에 의한 여아 낙태-아들 출산 행위를 두고 하는 말이다.

 

- 여아 9%가 뱃속에서 죽는다 -

주부 김아무개(33)씨는 첫딸을 낳고 한 번 중절 끝에 아들을 얻었다. 남편은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한 연구소 연구원(38). 부부는 딸 하나로 만족하려 했지만 손자를 강력히 원하는 시부모 때문에 갈등이 커져갔다. 결국 산부인과 의사인 남편친구 부부에게 읍소하다시피 태아의 성감별을 간청했다. 김씨부부는 마침내 아들을 낳고 가정의 평화(?)를 얻었지만, 낙태실태 보도나 캠페인을 접할 때면 '죽은 아기' 생각에 마음이 무겁다.

태아의 성감별-딸 낙태-아들 출산이란 성선택 출산행위는 이제 공공연한 비밀이다. 정부도 의료인의 성감별행위를 형사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등 규제를 강화하고 있지만 얼마나 실효를 거둘지는 의문이다.

우리나라의 출생자 성비는 94년 현재 115.4(출생 여자 1백명당 남자 수). 같은 유교권으로 남아선호사상이 강한 중국 대만 등을 앞질러 세계 최고 수준이다. 80년 104.3이었던 성비는 86년 111.8, 90년 116.8, 92년 113.8등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자연적인 정상출산 비율(성비106)을 크게 벗어난 이런 현상은 결국 남아선호관과 성감별에 의한 아들 출산이란 인위적인 요인 말고는 달리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다. 특히 의료기술의 발달은 여러 형태의 '건전한' 성감별을 가능케 함으로써 선택 출산을 전 계층을 상대로 확산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그렇다면 한해 단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뱃속에서 잔혹하게 죽어가야 하는 여아는 얼마나 될까, 전문가들에 따르면 성감별에 의한 낙태가 엄연히 불법인 만큼 시술자나 임산부 모두 공개를 꺼려 정확한 통계를 내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러나 자연상태에서의 정상적인 출산성비와 인구동태 신고자료를 비교해 성감별에 의한 여아의 인공임신중절 실태를 추정해 볼 수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통계조사에 따르면 성감별에 의한 여아 낙태는 연평균 2만2천4백여건.
1988년 1만9천여건이던 성감별에 의한 여아 낙태는 전통적으로 여아 출산을 기피하는 말띠해였던 90년 무려 3만여건으로 증가한 뒤 91년 2만4백여건, 92년 2만4천9백여건으로 감소했으나 93년과 94년은 각각 2만9천6백여건과 2만9천3백여건 등으로 다시 3만건대에 육박하고 있다. 2만9천건이란 수치는 한해 태어날 수 있는 전체 여아의 약9%에 해당한다. 결국 정상적으로 출산할 수 있는 여아 1백명 중 약 9명이 어머니 뱃속에서 이어진 생명을 빼앗기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이런 추세마저도 "단순 추정에 지나지 않으면 최근 급격히 줄고 있는 영아 사망률을 감안한다면 실제 성감별에 의한 여아 낙태는 훨씬 더 많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단지 아들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아이를 지우는 데 고통을 느끼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주부 김씨처럼 그것은 평생을 따라다니며 양심을 건드릴 게 분명하다. 그럼에도 자신의 여아를 '죽이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여러 유형이 있을 수 있다.

인구학자와 사회학자들은 대부분 뿌리깊은 남아선호사상을 든다. 이들은 "우리 사회의 남아선호사상은 연령 지위 학력 경제력 지역을 막론한 광범위한 것"으로 든다. 다시 말해 특정계층이 주도하는 현상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일부 산부인과 의사들은 광범위한 남아선호 현상 중에서도 우려할 만한 새로운 현상으로 고학력 저연령층 가임인구의 남아선호관에 주목한다. 한 의사는 "최근에는 젊은 부부들이 핵가족화, 맞벌이 등에 따라 아이를 가급적 적게 낳되 아들을 바라는 경향이 두드러지는 것 같다"며 "아들 하나만을 낳기 위해 여아 낙태도 감수하려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된다"고 말한다. 그는 전통적 남아선호관의 잔향, 시부모의 압력, 자신들이 직간접으로 체험한 우리 사회의 남녀차별, 낙태시술을 위한 경제적.시간적 여유 등을 복합적인 요인으로 추측한다.


- 서울 일부 지역 "남초성비" 두드러져 -

같은 의견을 갖고 있는 또다른 산부인과 의사는 "최근 중산층 이상 지역 출생아의 남녀 불균형은 80년대 중후반부터 두드러진 고학력 젊은 층의 선택출산의 한 결과로 추정해 볼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나아가 "우리 사회의 고학력계층, 중산층 이상의 계층이 성선택출산을 주도하고 있다"는 주장까지 펴고 있다.

이런 주장은 일단 학생들의 성비 통계에서 표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서울의 경우 중산층 이상의 거주지역이 밀집해 있는 구(區)일수록 남아비율이 높다는 것이다.〈1995 서울 통계연보〉에 따르면 서울지역 초등하교 학생의 남녀 성비는 108.7. 그러나 구단위별로는 강남구가 평균비를 훨씬 웃도는 114.8로 가장 높다. 그다음은 강동 114.3, 양천 113.2, 서초 113.0순으로, 104.6에서 약 110 사이에 밀집해 있는 다른 구보다 남자비율이 월등히 높다. 이처럼 서울일부 지역 초등학교에서 남초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은 왜일까. 관계자들은 일단 교육열을 원인으로 든다.

강남지역의 한 교사는 "강남을 비롯한 중산층 이상 지역 학교의 남자 비율이 높은 것은 아무래도 딸보다 아들의 교육을 중시해, 취학연령의 아들을 둔 학부모들이 좋은 학군으로 전입하고 있기 때문"으로 본다.

그러나 학생 가정의 자녀구성을 보면 반드시 그것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부분도 있다.

서울교육청이 성비 조사를 위해 임의로 고른 강남구 ㄷ초등학교 한 학급의 자녀구성을 보자. 이 학교는 전교생이 1천5백여명으로 남녀 성비는 120.2. 강남구의 평균 성비 114.8보다 훨씬 높은 학교다. 그중에 비교적 성비구성이 전체와 비슷한 2학년의 한 학급(남자 23명, 여자 19명 성비121)을 살펴보면 반 정원 42명 중 아들만 있고 딸이 없는 가정은 30.9%인 반면 아들이 없고 딸만 있는 집은 3명으로 전체의 7%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또 1남1녀의 가정은 54.8%(남-여 순 28.6%, 여-남 순 26.2%)였고 3남매를 둔 가정은 3명, 75였다. 42가구의 93%가 아들을 갖고 있다는 것은 자녀 구성에서도 남아를 선호한 경향을 뚜렷이 읽게 한다.

반면 역시 교육청이 임의로 고른 중랑구 ㅅ초등학교 2학년 한 학급(24명)의 경우에는 딸만 하나 또는 둘을 둔 가정이 20.8%로 ㄷ초등학교보다 월등히 높다. 아들만 있는 경우 33.3%, 남매는 8명 33.3%(남-여순, 여-남순 각각 16.6%)였으며 3자녀 가정은 12.5%로 비슷했다.

한편 ㄷ초등학교 학급은 42명, 학생 중 2명을 제외한 학생의 부모가 모두 대졸 또는 대학원졸의 학력이었으며, 담임교사는 생활 정도를 상, 중, 하로 나눠 각각 9명, 23명, 10명으로 판단하고 있다. 반면 ㅅ초등학교의 담임교사는 "학교가 서울 변두리의 재개발지역에 위치해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없어 보이는 가정의 경우를 강남의 중류수준으로 생각하면 될 것"이란 전제하에 상층을 6명, 중을 13명, 하를 5명으로 분류하고 있다. 부모 학력은 대졸 이상이 13명, 고졸 이하가 11명이었다.


- 부모의 학력. 소득 따라 달라 -

이 두 학급이 전반적인 경향을 대표한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전체 구별 성비, 학교 성비와 학급 성비, 가족구성비 등을 차례로 살펴볼 때 강남지역 주민들이 자녀의 성선택 폭이 훨씬 넓다는 사실이 나타나고 있다. 그것은 또한 부모 양쪽의 학력과 생활 정도에서도 어느 정도 영향을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현상은 결국 성감별에 이은 아들 출산 대열에 고학력의 중산층 이상 계층이 적극 나서고 있거나 나아가 이런 현상을 주도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추정을 가능케 하고 있다. 하지만 성감별에 의한 태아낙태 실태의 정확한 조사가 사실상 불가능한 상태에서는 단정짓기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한양대 사회학과 김두섭 교수는 "남아선호사상이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상황에서 어떤 특정계층이 성선택에 의한 여아낙태-아들 출산을 주도한다고 볼 만한 근거는 아직 없다. 그러나 앞으로 직업별, 소득수준별 성감별 낙태실태에 대한 조사가 이뤄지면 계층별 특성을 어느 정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개인과 사회의 윤리문제 -

보건사회연구원 조남훈 부원장은 "과거에는 부인의 학력수준, 생활 정도, 현존 자녀수, 거주지역 등이 영향을 끼쳤으나 최근에는 자녀의 성구성이 출산과 낙태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변수가 되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앞으로 남아선호사상 속에 저출산시대가 지속되면서 성감별에 의한 낙태가 인한 성비불균형은 갈수록 심화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연간 출생수의 약42%를 차지하는 둘째 아이 출산에도 성감별에 의한 아들 선택이 이뤄질 경우 2천년대에는 거의 '재앙'에 가까운 성비불균형 현상이 초래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인구 전문가들의 말대로 우리 사회의 중산층 이상 고학력, 고소득계층이 남아선호사상을 주도한다는 공식적인 지표는 적어도 아직까지는 없다. 그러나 실제 현실에서는 일부 고학력 중산층의 성감별-여아 낙태 성행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점차 높아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를 우리 사회 일부 계층의 가족이기주의, 계층이기주의로 마뜩찮게 보는 시각도 늘고 있다.

조남훈 부원장은 "성감별에 의한 낙태가 불법이냐 아니냐를 떠나 개인과 사회의 윤리 문제다. 의사는 물론이고 지식인 등 인구문제나 성비불균형의 폐해를 더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는 사람들조차 실생활에서는 남아선호 사상을 버리지 못하는 이중적 자세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한다.

계획적인 살인이나 다름없는 '성감별에 의한 여아 낙태', 지금 추세대로라면 결혼 적령기 남자 다섯명 중 한 명꼴로 짝을 찾지 못하는 성비불균형의 폭발시점은 2010년께. 불과 10여년 뒤의 일이다. 재앙은 결코 '나'와 '우리 가정만'을 피해가지는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