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자랑,『한국은 낙태와 피임 선진국인가』, 한국논단, 86('96.10), pp.218∼224


- '원하지 않는 생명' 죽일 수 있나? -

우리나라 전체 성인여성 10명중 4명 가량이 한 번 이상 낙태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93년, 조선일보와 한국갤럽이 공동으로 실시한 '인공유산실태'에 관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성인여성의 40%가 낙태를 한 적이 있으며, 이 가운데 '1번'이 21%, '2번'이 11%, 그리고 '6번 이상'도 1.3%로 나타나 낙태 경험 여성의 평균 낙태횟수는 2.1회인 것으로 나타났다.

93년 한해 동안만 결혼한 20세∼44세의 여성중에서 35만8천여명이 낙태를 했으며, 여기에 기혼여성이 아닌 미혼여성의 낙태까지 합한다면 우리나라에서만 한해에 약 1백만건 이상의 낙태가 이루어지고 있는 셈이 된다.

- 낙태순위 세계1위 -

이러한 결과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낙태 순위 1위라는 점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한국인의 사회지위(96년)'에 의하면 지난 70년대에는 30대 부인들이 주로 인공유산을 했으나 90년대에 들면서는 20대 여성들의 인공유산이 크게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추세는 요즘에는 젊은층 피임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데다 아들을 골라 낳고 자녀도 될 수 있는 한 늦게 두려는 경향 때문에 20대의 낙태가 크게 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뿌리깊은 남아선호사상으로 인한 아들 골라 낳기와 여성들의 활발한 사회진출로 인해 결혼한 20대 초반 여성들의 자녀 늦게 두기 등의 풍조가 인공유산율을 높여 놓고 있다.

성감별에서 비롯되는 임신중절을 성비차를 크게 만듦으로써 성비불균형이라는 인구문제까지 포함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만 남아를 가려 낳기 위한 불법태아 성감별검사가 연간 4만 여건에 이르고, 성별검사에서 여아로 밝혀질 경우 임신주절 수술을 받는 여성도 연간 2만여명에 이른다. 따라서, 93년에는 여아만 가려내 임신중절 수술을 받은 건수가 최소 2만8백여건으로 추정되며, 이로 인해 연간 최소 2백여억원의 의료비가 낭비되고 있다고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밝혔다. 남아선호사상이 심한 인도의 경우에는 성별검사 결과에 따른 여아의 임신중절수술이 매년 25만건에 이른다. 또한, 남아선호사상으로 인해 지방지역에서는 출생한 여아를 목조르거나 질식시키거나 독을 먹여 죽이는 여아살해가 몇세기 전부터 성행하고 있다. 이로 인해 1991년에는 남자 1천명 당 여자 9백27명으로 인구의 성비 불균형도 매우 심각한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따라서, 인도정부는 출산전 태아의 성별검사를 금지하는 법을 96년 1월 1일자로 발효시키기도 했다.  이 법은 여태아를 유산시킬 목적으로 출산 전에 태아성별 검사기술을 이용하는 자를 최고 3년 징역과 1만루피(미화 3백 12달러)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규정했다.
 


- 낙태사유 으뜸은 「원하지 않는 임신」-

낙태가 정부차원에서 다루어지는 예는 인도뿐이 아니다. 낙태금지법이 있는 미국에서는 정치적 쟁점의 좌표를 가르는 가장 중요한 축이 '낙태문제'가 된다. 낙태에 대한 찬반에 따라 좌파, 우파, 중도파라는 분류표가 붙여지곤 한다. 이렇게 낙태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큰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전세계에서 한해에 실시되는 낙태는 적어도 4천5백만건에 이른다. 이는 합법적 또는 불법적으로 실시되는 것으로, 이렇게 낙태되는 태아들은 신생아 3명대 1명의 비율에 이르고 있다고 세계보건기구(WHO)가 96년 2월에 밝혔다.

세계보건기구 보고서는 1990년을 전후해 실시된 한해의 합법적 낙태는 신생아 대비 6대 1인 약 2천5백만건에 이르고 있으며, 안전치 못한 낙태는 신생아 대비 7대 1인 2천만건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후자의 경우는 비밀리에 실시되기 때문에 확실한 수를 헤아리기 어렵다.

임신중절은 특히 여성들에게 건강을 해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정신적으로도 치명적인 영향을 준다. 개발도상국에서는 매년 여성 60만명 정도가 불법낙태를 포함한 출혈, 패혈증 등 임신 및 출산과 관련해 사망하고 있으며 부상, 감염 등 병에 걸리는 여성들을 포함할 경우 세계적으로 1천5백만명의 산모가 목숨을 잃고 있다. 특히 안전치 못한 낙태로 야기되는 합병증으로 인해 한해에 7만명 이상의 여성이 사망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또 낙태로 인한 장기적 결과 중에는 만성적 골반통증과 골반의 염증성 질병, 2차 불임 및 기타의 합병증이 발생한다.
 

- 10대, 임신상담 4천6백여건이나 -

여성들의 사회진출로 1960년대 여성의 초혼 연령이 21.6세에서 1990년대에는 25.5세로 높아지면서 결혼전 이성교제를 통한 성문제와 성개방 풍조로 인해 20대 여성의 낙태가 갈수록 늘어가고 있을 뿐 아니라 10대 청소년의 낙태도 갈수록 늘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에는 10대 소녀의 임신도 큰 문제가 되고 있으며, 중절수술도 그 연령이 점차 낮아지고 있다. 지난해, 대한가족계획협회가 서울등 전국 주요 공단지역에 설치한 7개 청소년 상담실을 통해 상담한 총 1만4천8백96건의 상담 내용을 분석해 보면, 성상담창구를 찾는 여학생들은 '원치 않은 임신'으로 가장 고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0대 소녀들이 상담을 의뢰한 4천6백54건 가운데 성폭행과 이성교제 등으로 빚어진 '원치 않은 임신'에 대해 물어온 경우가 18%(8백14건)나 돼 가장 많았다. 특히 그들의 경우, 16∼20세가 27%나 됐으며 15세 이하도 3%를 차지해 미성년 임신이 심각한 수준에 달했음을 알 수 있다. 과연 그들은 자신이 임신한 태아를 출산할 수 있으며 모성을 느끼며 아이를 양육할 수 있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면 그 10대 소녀들은 어디를 찾게 되는 것일까? 피서철이 끝난 9∼10월이면 피서지에서의 '불장난'으로 임신한 여중고생들이 대거 몰려와 평소 때보다 몹시 붐빈다는 산부인과.
이제는 10대 소녀가 친구들과 병원을 찾아가 당당하게(?) 낙태를 요구하기도 한다고 한다. 지난 1월, 부산에서는 고교생(남)이 여자 친구를 임신시킨 후 낙태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급우들을 상대로 금품을 갈취하다 경찰에 붙잡힌 경우도 있었다. 또 어느 고등학교에서는 남학생이 같은 반친구들에게 신문지를 돌리면, 친구들은 '낙태비용 모금운동'인 것을 눈치채고 신문지 속에 한푼두푼의 돈으로 신문지를 돌린 친구에게 도움을 주기도 한다고 한다. 10대들은 임신할 경우 친구들이 서로 돈을 모아 낙태비용을 대주는 것이 보통인데 이것을 '낙태계'라고까지 부르고 있다. 또 술집이나 카페에서 며칠만 일하면 낙태수술에 필요한 경비를 쉽게 벌 수 있기 때문에 임신하는 것을 벼로 겁내지 않고 대수롭지 않은 일로 생각하기도 한다.


- 미혼여성 낙태가 50만건 -

이제는 낙태여성의 나이가 점점 어려져가고 청소년들이 임신이나 낙태에 대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어 문제가 더욱 심각해져 가고 있다. 물질만능주의로 인해 인간성 상실과 생명경시 풍조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10대들이 성에 눈뜨는 시기가 급속하게 조기화되고 성문제로 고민하는 청소년, 소녀의 연령층이 갈수록 낮아져 올바른 성지식과 성도덕관의 확립이 시급한 실정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미혼여성 낙태만도 연 50만건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옛날에는 미혼여성이 임신을 한다는 것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지만, 만약 임신을 했을 경우에는 낙태를 위해 남들 몰래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거나 언덕에서 구르기, 또는 생파를 갈아 마시는 등 야만적인 낙태방법을 동원하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더욱 손쉬운 낙태를 위해 먹는 낙태약이 시판되고 있는 실정이다.

임신중절이 특히 많은 여성들의 건강을 해치는 요인으로 작용하면서 임신중절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관심이 높았던 나라에서는 수술이 아닌 방법으로 인공유산을 시킬 수 있는 먹는 낙태약에 대한 연구를 이미 오래 전부터 해 왔었다. 따라서 88년에 프랑스 제약회사 루셀 위클라프(Rousel-Uclaf)사에서 먹는 낙태약을 개발하였고, 이 약으로 낙태를 시킨 여성만 연간 20여명에 달하고 있다.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시판이 되지 않지만, 시판이 되고 있는 나라에서는 복잡한 수술을 거치지 않기 때문에 특히 청소년들의 경우 약을 먹어 죄의식이나 아무런 부담없이(?) 낙태를 함으로써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기도 한다. 또 약을 잘못 복용했을 때에는 외과적인 수술보다 오히려 더 위험하고 번거로울 수도 있다.


- '낙태할 권리', '태어날 권리' 택일해야 -

낙태는 생명의 존귀함이나 생명을 신성시하지 않는 데서 시작된다. 세상에 있지 않고 단지 뱃속에 태아가 있다고 해서 하나의 생명체로 인식하지 못하고, 오히려 원치 않을 경우에는 언제든지 없앨 수 있는 대상으로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대한가족계획협회 모자보건과의 윤선규과장은 "일단 태어난 아이의 경우에는 모든 물질적 풍요와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과보호, 그리고 무조건적인 사랑을 쏟아 부으면서, 왜 뱃속에 있는 생명은 아무렇지도 않게 낙태를 하는지 모르겠어요."라면서 낙태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피임실천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우리나라의 피임실천율은 94년 현재 77.45로 일본의 64%, 독일의 75%보다도 높은 수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공임신중절을 경험한 여성 중 47%가 피임을 했음에도 임신을 한 것으로 나타났는데 그 원인은 피임 방법이 적절치 못하거나 정확치 못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우리나라 여성의 낙태원인이 피임실패로 인한 '원치 않는 임신'인 점을 감안해 본다면 정확하지 못한 피임법도 낙태의 한 원인이 된다고 할 수 있다. 독일이나 스웨덴, 네덜란드와 같은 나라에서는 초등학교때부터 체계적인 성교육을 통해 올바른 성지식과 실질적인 피임법을 교육하고 있는 것에 반해, '수박 겉핥기'식의 피상적이고 단편적인 지식만이 성교육의 전부가 되고 있는 것이 우리나라의 실정이다.

지난 7월에는 성폭행 당해 임신한 여중 3학년생이 수업 중 양수가 터져 병원으로 옮기던 중 출산한 사실이 밝혀져 우리에게 큰 충격을 던져준 바 있다. 그러나 주위 사람들이 얼마 동안이나 임신한 조차 알지 못했다는 점도 큰 충격을 안겨 주었다. 이러한 성폭행의 경우에는 여성의 정신적 피해가 1차적이겠지만 원치 않는 임신으로 육체적, 정신적, 나아가 사회적으로 피폐를 가져올 수도 있는데, 이런 경우 낙태를 찬성해야 하는가, 아니면 반대해야 할 것인가도 낙태 문제의 중요한 한 부분이다. 낙태의 찬반을 두고 여성학, 의료윤리학, 종교계에서는 많은 논의를 해 왔다.

태아란 맹장과 같은 것이어서 태어나기 전이면 언제라도 제거될 수 있다는 극단론에서부터 모체의 생명이 위험한 경우를 제외하고 어떤 경우에도 보호해야 한다는 다른 극단론까지 다양하다. 낙태를 가장 반대하는 견해는 주로 기독교 전통의 신학자, 그 중에서도 특히 가톨릭에 의해 강하게 주장돼 왔다. 낙태는 하느님이 주신 소중한 생명을 없애는 살인행위이기 때문에 모체의 건강을 해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절대 허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낙태를 찬성하는 경우도 있다. 여성운동가나 페미니스트들은 여성인 원하지 않거나 아이에 대해 책임을 질 수 없는 상황에서는 낙태를 결정하는 것은 도덕적 딜레마 속에서 윤리적으로 덜 나쁜 것을 택하는 것이라 주장한다.


- '나도 생일을 갖고 싶어요' -

그리고 D대학의 모교수는 "한 해에 1백만건에 달하는 낙태가 실시되고 있는데, 만약 낙태가 행해지지 않는다면 해마다 1백만명의 신생아가 태어나게 됩니다. 그러면 해마다 늘어나는 인구와 미혼모들은 어떻게 합니까?"라고 낙태 찬성론을 펴기도 한다. 하지만 모체에게 '낙태할 권리'가 있다면 태아에게는 '태어날 권리'가 있는 것이다. 아기는 임신 후 21일이 지나면 심장박동이 시작되고 9주가 지나면 손에 지문이 생기고 이마에 주름살이 잡히며 12주면 잠도 자고 고개도 돌리며 입도 오물거리면서 발가락도 꼼지락거린다. 사실, 태아의 기관형성은 12주 안에 모두 끝나며, 12주 후에는 태아의 크기가만이 자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별 죄의식 없이 낙태를 하는 것은 우선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크게 작용하는 듯하다. 단지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우리가 마치 뱃속에 있는 한 인격체의 주인인 양 행세하며 엄연한 생명체를 마음대로 없애는 것은 마땅한 것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할 일이다.
 

- 강간 세계 3위, 하루 낙태 6천여건 -

올해는 유엔이 정한 '세계 가정의 해'이다. 가톨릭도 이에 맞춰 반 낙태운동을 펴 오고 있다. 구체적으로 10주된 태아의 발과 꼭 같은 크기와 모양으로 배지를 만들어 배부했다.
또한 대한가족계획협회는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인공유산을 예방하기 위해 '나도 생일을 갖고 싶어요'라는 제목으로 태아의 절규를 전하는 그리의 스티커를 1만장 제작해 전국 시도부를 통해 병원과 시민들에게 나눠줌으로써 모성보호와 생명존중 운동을 벌여나가고 있다.
낙태는 필요악인가.
우리나라는 강간율 세계 3위, 하루 낙태 6천여건이라는 수치스러운 기록을 갖고 있다.
정상적인 가정을 이루고 부부의 사랑으로 인해 축복으로 태어나야 할 아이가 비정상적인 과정을 통해 임신될 경우에는 신성시되고 축복받아야 할 생명이 축복을 받기는 커녕 오히려 불행을 가져오게 되고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될 수도 있다. 그렇다고 원치 않는 임신이 될 경우에 무조건 낙태만은 안된다고 할 수도 없을 것이다. 이제는 불법낙태에 대한 법률적 제재보다는 성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심어주는 교육적 방법이 더욱 절실한 때이다. 영어공부에 기초가 있듯이 성교육에도 기초가 있다. 그것은 바로 생명을 가르치는 것이다.

생명교육이 튼튼해지면 성은 밝고 건강한 성으로 자리잡는다. 또한 임신과 출산에 대해서도 단편적인 지식이 아니라 생명의 철학과 함게 정확하고 올바른 피임방법도 알아야 한다. 올바른 피임만이 원치 않는 임신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체가 진통의 대가로 얻어 낸 생명이 얼마나 신비롭고 귀중한 존재인지를 인색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