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주,『약물이 태아를 삼킨다』, 한겨레21, 80('95.10.29), pp.76∼78


- RU-486유입에 미국 정치권 초긴장...낙태논쟁 새로운 불씨 -

미국이 선거철이 됐다. 선거 때만 되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쟁점이 낙태문제다. 미국 대통령 선거에 나설 것으로 예상되는 후보자들의 입장도 갈린다. 클린턴은 자유주의 진영을 대표하여 낙태권을 보호하자는 입장인데 반해 이른바 신보수주의 진영의 대변자임을 자처하는 보브 돌은 낙태 절대불가론을 편다. "성공한 흑인"으로 부러움의 대상인 콜린 파월의 입장은 조금 묘하다. 임산부의 권리를 보호하자는 데서는 자유주의적 태도를 취하면서도 막상 아이가 태어난 뒤에 미혼모 등 저소득층에게 제공하는 여러 가지 혜택은 줄여 나가자는 견해이다.

 

- 대통령 선거에 드리운 '낙태딜레마' -

그러나 선거운동에서 이 문제가 아직은 쟁점이 되지 않았다. 선거 주자들은 당장은 모금운동에 힘을 쏟으면서, 부각된 저소득자 의료보조 문제에 신경을 쓰고 있다. 사실 미국 대통령 후보자들은 할 수만 있다면 낙태문제를 비켜가려 한다. 워낙 '뜨거운 감자' 같은 것이기에 그렇다. 지금 미국국민치고 낙태문제에 의견이 없는 사람이 없다. 심지어는 선거권이 없는 10대들도 민간하게 반응한다. 자기들도 언제 아이를 임신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미국사람들 거의 모두가 낙태에 관한 한 찬성 또는 반대 가운데 한쪽 진영에 서 있다. 어정쩡한 생각으로는 지역사회에서 견디기 어렵다. 당장 낙태시술소를 동네에 허용할 것이냐 말 것이냐, 미혼모들에게 복지비 지출을 늘릴 것이냐 말 것이냐 하는 문제가 이들의 피부에 닿아 있는 탓이다. 재집권을 노리고 있는 클린턴도 고민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집권 초기에 낙태문제에 대한 어정쩡한 견해 때문에 낙태반대론자들에게 얼마나 시달렸던가. 그들은 레이건 . 부시 행정부 동안 아무나 함부로 낙태를 못하게 돌려놓은 법적인 장치를 클린턴이 되돌릴까봐 걱정이 대단했다. 클린턴이 연방대법원에 어떤 사람들을 임명하는가 신경을 곤두세웠던 기억도 새롭다.

선구주자들에게 조금 안심이 되는 일은〈로이터 통신〉의 보도다.〈로이터 통신〉은 연방당국자의 말을 빌려 10대 임신율이 91년부터 93년 사이에 4%나 줄었다고 전했다.〈AP 통신〉의 보도도 고무적이다.〈AP 통신〉은 최근 카이저 재단이 미국 전역에서 3백7명의 부인과 및 산부인과 의사들을 상대로 실시한 조사결과를 옮겼다. 이에 따르면 83년에는 조사에 응한 의사들 가운데 42%가 "낙태시술을 한 경험이 있다"고 대답한 데 비해, 지금은 33%만 "그렇다"고 했다. 특히 중서부 출신의 젊은 의사들이 낙태시술을 꺼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조사결과를 놓고 낙태를 반대하는 단체들이 기뻐한 것은 물론이다. 그동안의 운동이 열매를 맺었다고 자평하기도 했다. 낙태권 보호론자들은 이런 결과가 낙태시술자들에 대한 공격의 결과라고 해석한다.


- 여권신장으로 "낙태논쟁" 거세져 -

미국에서 이 문제가 공론화한 것은 70년대부터다. 지금은 고전이 된〈낙태와 모성정치〉를 쓴 크리스티나 루커에 따르면, 이것은 여성운동의 신장과 관계가 있다. 태아의 "태어날 권리"에 종교적 관심을 두던 데서 임산부의 여성으로서의 권리로 초점이 이동하게 되었다. 미국의 초기 논쟁을 보면 "태아가 언제부터 법적인 사람이냐"하는 것을 놓고 다투었다. 고대 그리스 사람들에게도 이 문제는 골칫거리였던 모양이다. 피타고라스학파는 이를 사람이라고 보았고, 스토아학파는 아니라고 우겼다.

근대 영미법의 전통은 태아 때부터 상속권을 포함한 법률적 권한을 인정하면서도, 신생아로 탄생하면서 효력이 발생하는 것으로 본다. 미국 독립 초기의 13주에서는 "임산부가 태동을 느낄 때부터"사람으로 보았다. 다시 말하면, 그 전에는 아이를 지워도 괜찮았던 셈이다. 지금은 좀 객관적인 기준이 생겼다. 매사추세츠주의 경우 임산부의 건강이 위태로운 경우만 제외하고, 24주가 지나면 낙태를 허용하지 않는다. 임산부의 권리문제가 떠오른 것은 여성이 눈부시게 미국의 직업사회로 진출해 가는 지난 30년 사이의 일이다. 여성의 취업기회가 확대되면서 결혼관, 가족관이 바뀌게 된 것이다. 가정 안에서의 전통적인 '현모양처'이미지를 벗어나겠다는 여성들이 상대적으로 늘어난 결과다. 직업전선의 경쟁도 치열해지면서 "꼭 결혼을 해야 하는가"또는 "결혼을 하더라도 반드시 아이를 낳아야 하는가"라는 생각이 지배하게 되었다. 혹시 임신을 하더라도 나름대로의 경력을 추구하는 이들의 시간계획에 맞지 않는다면 지울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바로 이 '휴화산'같은 낙태논쟁에 최근 하나의 불씨가 던져졌다.〈뉴 잉글랜드 의약품 저널〉 최신호가 "약을 먹어서 아이를 떼는 것이 수술하는 것보다 임신 초기에는 훨씬 안전하고 효과적"이라는 주장을 실은 것이다. 심각한 것은 이 주장이 넌지시 가리키고 있는 약이 RU-486이라는 사실이다. 이 낙태약품은 88년에 프랑스에서 개발한 것이다. 원래 이 약품은 부신질환에 효과가 있던 것인데, 프로스타글라딘이라는 약품과 함께 잘만 복용하면 쉽게 아이를 지울수 있다는 임상결과가 나오면서 프랑스에서 시판되기 시작했다.

 

- 조기복용효과... 기형아 출산 등 부작용도 -

프랑스자체 조사로서는 95%의 낙태성공률을 보았다고 한다. 그러나 임신 3개월 이전에 복용해야 하고 잘못하면 기형아를 출산하는 등 부작용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꺼려한 것도 사실이다. 현재 프랑스에서는 인기를 얻고 있어선지, 아이를 떼려는 여성의 33%가 RU-486을 사용하고 있는 형편이다. 실제로 미국의 낙태권 보호론자들은 이 약이 나오기가 무섭게 수입운동을 벌여왔다. 이에 대항해 가톨릭을 비롯한 낙태반대운동기구들은 강력한 역로비를 벌여왔다. 특히 전국생명권위원회(NRLC)라는 단체는 "미국의 어떤 의약업체가 RU-486을 수입하거나 판매한다면 이 업체의 제품 전체를 보이콧하겠다"고 경고한지 오래다. 당장은 반대론자들의 로비가 힘이 더 있었는지, 미국 연방식품의약국(FDA)은 이미 89년에 "우편, 인편 등 어떤 경로를 통하든 RU-486의 미국 국내 반입은 불법"이라는 결정을 내린 바 있다.

그러나 사정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미국 의사들이 RU-486의 제조 비법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물론 RU-486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약을 제조하면 불법이지만, 성분을 따로 배합하여 사용하는 데는 사법당국도 어쩔 도리가 없는 것이다. 낙태시술 제공자가 상대적으로 줄어드는 현재의 추세를 볼 때, 미국에서 사실상의 RU-486사용이 늘어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전망한다. 가장 큰 이유는 낙태를 원하는 여성이 줄어들 가능성이 당분간은 없기 때문이다. 강간, 무책임한 10대 임신, 근친상간에 의한 임신 등 정말 원하지 않는 경우말고도, 맞벌이 부부가 피임을 잘 못해서 원치 않는 임신을 한 경우에도 대부분 낙태를 하려 하기 때문이다.

RU-486 전에도 낙태논쟁의 표적이 된 약품은 있었다. 71년에 개발된 Del-Em이 바로 그것이다. 당시 한 여성운동가가 개발한 이 기구는 태아를 흡입하는 장치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낙태를 하려는 임부의 자궁 속에 수술기구를 넣고 긁어 내는 복잡한 수술을 해야 했던 것이다. 그런데 Del-Em의 출현으로 "좀더 값싸고 손쉽게" 낙태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때부터 미국의 낙태시술은 널리 이루어지게 됐다. 그 가운데서도 자유와 진보를 자랑하는 캘리포니아주에서 가장 앞서 나갔다. 73년 연방 대법원 결정으로 미국 50개주 전역에서 낙태가 합법적으로 되기 전의 일이다.

그러나 앞으로 RU-486이 미국사회에 끼칠 영향은 Del-Em와 비교할 수 없다. 이제부터는 낙태가 시술자와 낙태자 사이의 '간단한 거래'로 이루어질 수도 있게 된 것이다. 굳이 병원이나 시술소를 찾아갈 필요가 없게 되었다. 자기 집에서라도 의사의 조언만 받으면 가능하게 된 것이다.

물론 법률적인 측면은 제외하고 말이다. RU-486의 미국무대 등장과 더불어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언제 어떤 형태로 낙태논쟁이 불거질지 두고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