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경, 『한국사회와 낙태 문화』, 고원, 1999


밀레니엄의 문턱에서 미국과 유럽사례에 의한 접근

우리는 세기말의 끝자락에 와 있다. 이때 새삼스레 무슨 낙태문제를 꺼내느냐고 반문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무수한 사회단체와 세미나 등에서 기회 있을 때마다 낙태의 반사회윤리적 반도덕적 주장과 법적 제도적 규제장치를 외쳤건만 여전히 우리사회에서 향존하고 있는 낙태문제를 외면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 글 쓰는 이는 결코 무조건적 낙태찬성자는 아니나 국제통화기구(IMF)의 감시 아래 있는 우리의 현 상황에서 낙태를 지고지순의 논리로, 성생활이나 성관계의 문란, 타락에서 오는 결과라고 매도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이다.

앞으로 다룰 낙태문제는 우리 사회현실에서는 어떻게 이해하고 풀어나가야 할지를 살피고자 하며, 이를 위해 외국의 낙태에 대한 현실인식은 어떠한 것인지를 보태고자 한다.

용어의 정리

우리가 낙태(落胎)라고 하는 단어를 사용할 때는 부정적 의미가 내포되어 있음을 누구도 부인하지 않을 것이다. <배 속의 애를 지운다>라는 의미의 낙태에는 <인위적>, <인공적>이라는 뜻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유산(流産)과 낙태의 구별이 우리의 임신문화에서도 확연히 다르게 쓰이듯이, 영어의 miscarriage(유산)와 abortion(낙태)도 그 의미가 구별된다. 프랑스에서는 태아의 탄생이 불가항력으로 중지된 경우에도 abortement spontaon 라고 쓰고, 인공적인 경우는 abortement provoqu 라고 하나, 일반적으론 abortement 이라는 단어를 낙태에 국한시켜 부정적 의미로 일반화하고 있는 것 같다.

프랑스어에 avortement이란 단어가 들어와 정착된 것은 1190년으로 라틴어를 그 어원으로 하고 있으며, 낙태를 전문으로 하는 사람을 Faiseuse d' anges(직역하면 천사를 만드는 사람이나, 실제의미는 낙태전문산파)라고 부른다. 자연유산 이외의 일체 낙태를 금했던 카톨릭 전성시대 프랑스에서는, 임신중절은 그 시술을 받는 자나 하는 자 모두에게 극형을 내렸었다. 프랑스대혁명(1789)전인 13-18세기에 걸친 약 5세기 간 국가권력과 법이 적용되는 동안에도 카톨릭교회는 낙태를 순진한 영혼으로부터 영원한 구원의 가능성을 빼앗는 살인죄로 간주하였다(쟝 루이 프랑드렝, 성의 역사. 편집부역, 동문선, 1998, p.203)

카톨릭 교회의 이러한 엄격한 규제에도 불구하고 지상의 권력자인 왕들은 그들 주변의 여성들의 낙태에 대해서는 몹시 관대하였다. 그 대표적 예를 우리는 앙리 4세(Henri IV)[프로테스탄트 왕구인 나바르 출신으로 카톨릭으로 개종하여 프랑스왕이 되었으며 부르봉왕가의 창시자]의 사생활에서 볼 수 있다.

앙리 4세는 우리에게 신구교를 화해시킨 낭트칙령(1598)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왕족이나 귀족들이 부부와 같은 정상적인 관계에서가 아닌 성관계의 결과로 여성(귀부인, 궁녀, 평민 구별없이)이 도저히 출산할 수 없는 불가항력의 상태에 처했을 때 낙태를 대부분 왕권으로 묵인하는 관대한 정책을 폈다. 그는 낙태가 영아살해나 영아유기보다는 사회문제를 덜 유발시키는 행위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반 평민(농민, 도시인 등)에게는 통치상, 종교상 칙령을 엄격하게 적용하였다.

우리나라에서 낙태란 서양의학이 본격화한 해방후 일반화되기 시작하였으며 한국전쟁(1950-53)을 겪은 후에 우리가 소위 말하는 불륜관계에서 대중화과정을 가져오게 되었다. 때문에 우리의 경우나 서양, 좁게는 프랑스의 사례에서 낙태문제를 다룸에 있어서 간과해서는 안될 개념, 상세하게는 산아제한, 피임, 영아살해, 성폭력 등의 용어들을 낙태문화 속에서 살펴봐야 하겠다.


성충동(sexual impulse)

시민사회에서 여성은 제2의 위치에 있다. 남성이 첫 번째이고 그 다음이 여성이다. 이것은 모계계승이 이루어지던 시대의 관계와는 완전히 뒤바뀐 현상으로, 무엇보다 원시공산제에서 사유재산제도로의 진전이 이 같은 변혁을 주도한 일차적 요인이다. 사유재산제의 세계에서 여성은 무산자이기 때문에 억압을 받을 뿐만 아니라 성적 존재로서도 억압받고 있다. 남자들은 알지도 못하는 무수한 장애와 방해물들이 도처에서 여성들을 괴롭히고 있으며, 여성들은 남성들에 비해 훨씬 많은 일들에서 여러 가지 제한을 받고 있다. 그리고 남성들은 당연히 누리고 있는 자유와 권리 가운데 그 일부라도 여성이 행사하면, 실수나 심지어 범죄로 다스려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렇듯 여성은 사회적 존재로서 또 성적 존재로서 이중으로 고통받고 있다. 이 두 관계 중 어느 쪽이 더 고통스러운가를 헤아리기도 힘들 정도이다. 따라서 여자가 아니라 남자로 태어났더라면 하고 한탄하는 많은 여성들의 심정도 이해할 만하다.

인간이 지닌 자연적 욕구들 중에서 성욕은 생존유지를 위한 식욕 다음으로 가장 강력한 욕구이다. 종족을 보존시키려는 이 충동이야말로 <생존의지>의 가장 강화된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이 충동은 정상적으로 발육된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심어져 있는 것으로서 성숙기에 이른 후에는 이 욕구의 충족이 정신적, 육체적 건강의 근본 조건으로 됙기까지도 한다.

신체 어느 한 부분이라도 그 활동을 소홀히 여기지 않으며 정상적인 방법으로 자연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일은 스스로를 건강하고도 균형있게 발전시켜 나가려 할 때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자기자신에 대한 사명이다. 신체의 각 부분은 자연이 부여한 기능을 수행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신체조직에 손상이 온다. 인간육체의 발달도 정신의 발달과 마찬가지로 연구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인간의 정신활동이 신체기관의 생리적 상태에 의해 지배받으며 양자의 건강상태가 깊숙이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는 진실이다. 한 쪽의 장애는 나머지 다른 쪽에도 나쁜 영향을 미친다. 소위 동물적 욕구란 정신적인 욕구와 별개의 차원에 있는 것이 아니다. 양자 모두가 신체조직의 작용이라는 면에서 동일하며,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다. 이 점은 남자뿐 아니라 여자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성욕이란 이 정도로 매우 강력한 것이기 때문에 성년에 이른 청년을 성적으로 지나치게 억압하면 남녀를 불문하고 신경계를 비롯하여 신체의 장애와 혼란을 일으켜 정신착란이나 심지어는 자살에 이르기도 한다. 그렇기는 하지만 이 성욕이 모든 사람에게 일정하게 주어져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이는 자제와 교양으로, 특히 외설스런 담화나 독서, 알콜 등이 주는 자극을 피함으로써 크게 억제될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남성에 비해 여성은 이 충동을 보다 적게 느끼며 심지어 성행위에 대한 혐오감을 느끼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그러나 세계적인 추세가 여성 교육과 지위향상으로 인해 남성 못지 않게 여성들도 성적인 호기심이나 욕구에 적극성을 보이고 있으며, 출산 문제에 있어서도 이전의 수동적인 자세를 탈피해 스스로의 적극적인 의사결정을 해나가고 있다.


영아살해와 낙태

빈곤에 대한 공포 그리고 자식들을 신분에 맞게 양육할 수 없으리라는 염려 때문에 계층을 불문하고 여성들이 모두 자연의 목적에도 위배되고 때로는 법에 저촉되기까지 하는 행위를 저지르고 있다. 온갖 종류의 피임법 그리고 원하지 않는 임신을 하였을 경우의 태아제거 즉 낙태가 바로 그것이다. 경망스럽고 양심 없는 여성들이나 이런 수단에 의지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대단한 잘못이다. 오히려 일반 부인들 중에 낙태를 하는 사람이 더 많은데, 남편의 지배로부터 벗어나려 생각하고 있거나 아니면 남편이 소망하는 다른 길을 열어주기 위해 자식 수를 줄여야 할 필요에 직면한 경우, 위험을 무릎쓰고 낙태라는 방법에 호소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밖에는 한 번의 실수를 모면하기 위해, 또는 임신과 출산 및 양육기의 불편함 때문에 낙태를 결심하거나, 자신의 매력이 일찍 사라져 남편을 비롯한 다른 남성들에게 자신의 아름다움을 드러낼 수 없게 될까 두려워 의사나 산파를 찾아가는 부인들도 무척 많다. 이 인공낙태가 매우 오래전부터 있었을 뿐 아니라 계속 증가하여 왔음을 확인할 수 있다. 고대민족들 사이에서도 낙태는 그다지 드문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오늘날에도 소위 문명화된 민족에서부터 미개민족에 이르기까지 모두 이러한 일을 행하고 있음이 사실이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낙태가 국법상으로 금지되어 있지도 않았으며 공공연히 시행되었다. 플라톤 시대까지만 하더라도 산파에게는 낙태시키는 일이 허용되어 있었으며 아리스토텔레스는 기혼자들에게 <아내가 적절하지 못한 시기에 임신한 경우> 조기분만시킬 것을 권장하였다. 루이에(Jules Rouyer)는 어떤 이유에서 로마여성들이 낙태라는 인공적인 방법에 호소하였던가를 자세히 밝힌 바 있다. 처음 시작은 불륜의 관계에서 비롯된 산물을 지워 버리기 위해서였지만, 차츰 끊임없이 쾌락에 탐닉할 수 있기 위해서 그리고 임신과 출산이 여성의 육체에 가져올 변화로부터 벗어날 수 있기 위해서 낙태를 행하였다. 로마에서 여성은 25세 내지 30세만 되어도 매력의 대상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여성들은 될 수 있으면 자신의 육체에 손상이 갈 일을 하지 않으려 하였다. 중세에 와서는 낙태를 중한 체형으로 처벌하기 시작하였다. 심지어 사형으로까지 다스리기도 하였으며, 낙태죄를 범한 자유민 여성은 농노가 되었다.

미국에서는 주(州)마다 거의 모든 대도시에는 기혼녀나 미혼여성의 낙태를 돕는 기구가 있다. 그리고 신문들은 이런 기구들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광고를 싣고 있다. 미국에서는 인공낙태가 정상분만과 크게 다를 바 없이 별 거리낌 없이 시술되고 있다. 그렇지만 1980년 이전에 독일을 비롯한 유럽인들의 생각은 달랐다. 당시 독일 형법에 따르면 행위자뿐만 아니라 그 동조자까지도 징역을 살도록 되어 있었다. 최악의 경우 낙태는 산모의 생명을 위협하며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건강을 해쳐 죽음보다 더 나을 게 없는 파국을 불러오기도 한다. 성공하여 잘 마무리가 된 경우라도 불임이라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는 것이다. 이 모든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낙태는 유럽에서도 더욱 늘어만 가고 있다.

원래 자식을 많이 두는 것을 두려워하여 기피해온 것은 현재 가지고 있는 재산과 자녀의 양육비 등을 고려할 때 부담이 너무 커지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유럽 선진국의 전계층이 그런 공포에 사로잡혀 그 대책으로 강구된 낙태가 거꾸로 인구의 균형을 위협하는 재앙이 되고 말았다. 프랑스 사람들은 계층을 불문하고 두 아이 갖기 제도를 고수해 왔다.

지구상의 그 어떤 문명국에서도 결혼하는 숫자의 상대적 비율이 프랑스보다 더 높은 지역은 없다. 그런데 평균자녀의 수와 인구증가에서 프랑스만 못한 나라도 드문 것이다. 일반시민은 물론 부유층까지도 이 제도를 엄수한다. <자의적 피임>을 위한 방법을 다루고 있거나 그것을 추천하는 책들의 판매 부수와 독자층이 유럽에서 어느 정도로 증가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면,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물론 이 책들은 모두 하나같이 <합리적>이라는 미명 아래 인류를 심각하게 위협하는 인구폭발에 관해서 어김없이 언급하고 있다.

낙태나 인공피임과 더불어 범죄도 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영아살해 및 영아유기가 계속 증가하고 있는데, 더구나 아버지 추적을 금지하는 프랑스 민법에 의해 한층 더 조장되고 있다. 프랑스 민법은 340조에서 <부친 추적은 금지>하고 있지만, 314조를 보면<모친 추적>은 가능하다. 버려진 아이의 아버지를 찾는 것은 금하고 어머니를 찾는 것은 허락한 이 법이야말로 유혹당한 여성에 대한 불공평한 대우를 그대로 드러낸 것이 아닐 수 없다.

이 법에 의하면 프랑스 남자들은 얼마든지 많은 유부녀와 처녀들을 농락할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은 어떠한 책임도지지 않으며, 양육비를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 이런 규정들을 제정할 당시의 구실은 여성들이 남성을 유혹하지 못하도록 저지해야 한다는 명목이었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성욕이 더 강한 남자가 유혹하는 쪽이 아니라 유혹당하는 쪽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민법 34ㅔ조에 이어 312조를 보면 <혼인기간중에 임신된 아이의 아버지는 남편이다>라는 규정이 있는데, 이것은 부친추적을 금지한 결고, 아내의 간통을 감수한 남편에게까지 아내와 외간남자 사이에서 출생한 아이를 자신의 자식으로 받아들여야만 하는 부담을 안겨주고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기만당한 여성들이 아버지되는 사람에게 양육비나마 청구할 수 있도록 하는 법률이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자행되는 영아살해 및 유기 드의 잔혹행위를 어느 정도 방지하기 위해 프랑스 집권층은 각종 복지재단을 설립하였다. 프랑스법에 따르면 기아는 고아이다. 프랑스정부가 사생아들을 <조국의 아이>로서 국가예산으로 양육하도록 하는 것은 이런 복지정책의 일환이었다.


한국의 낙태문화

요즈음 우리는 성에 대한 다양한 질문에 자주 접하게 된다. 그간 은밀하고 사적인 소통구조 속에서만 논의되어온 성문제를 공론화하려는 움직임이 우리사회 한 편에서 뚜렷하게 생겨난 것도 새로운 현상이다. 적어도 대학사회의 구성원들과 소위 신세대 사이에서는 이 주제가 이미 뜨거운 관심사로 떠오른지 오래이다. 각 대학의 신문이나 교지들이 성문화에 대한 특집들을 빈번히 다루고 있고, 이론적인 논의뿐 아니라 왜곡된 성문화나 매매춘, 동성애에 이르기까지 그 관심의 폭 역시 매우 넓게 나타나고 있다. 최근에는 대중매체에서도 청소년의 성교육이라는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이런 문제를 공론화하여 다루고 있다. 서울의 한 대학 총학생회가 전체학생을 대상으로 어떤 강의를 원하는지 조사했더니 성에 대한 올바른 이해에 관한 강의가 제일 수요가 많았다고 한다. 이제는 성문화라는 복합적인 주제를 체계적으로 다룰 시기가 온 것 같다. 내실 있는 논의가 펼쳐질만큼 이제는 이론적으로나 싫증적으로나 뒷받침이 될 만한 각종 자료들이 우리 주변에 나타나고 있고 관심 또한 고조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낙태가 갖는 사회적 문제를 역사적, 경제적, 사회적 측면에서 살펴보았다. 밀레니엄의 문턱에 서있는 오늘날 낙태는 정상적인 부부사이에서도 성에 대한 무지나 실수로 초래되고, 또 혼전 청춘남녀의 성적 충동에서도 야기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을 우리는 일상생활의 주변에서 늘 보기 때문에 무감각해져 있는 상태이다. 거기다가 매춘으로 야기되는 낙태, 또 정신질환이나 성폭력의 결과로 오는 인공중절 등을 우리는 언론과 매체를 통해서 늘 접하고 있다. 우리사회에서는 다행히 낙태 찬반론의 격렬한 시비가 없지만 개방사회인 미국에서는 낙태가 비윤리적, 반사회적이라는 의식에 사로잡힌 광신적 집단이 낙태 찬성론자를 살해하는 극단적인 일까지 일어나고 있다. 어쨌든 낙태로부터 여자의 육체와 정신을 모두 보호해야 한다는 반낙태주의자들의 주장이 설득력을 얻으려면 성문화의 개방적 교육이 정부나 시민단체들에 의해 더욱 활성화되어야 할 것이다. 이에는 보건복지부의 정책차원에서만 여성의 낙태문화가 주도될 것이 아니라, 교육부와 문화관광부, 법무부, 행정자치부, 지방자치단체 등 각 부처에 걸쳐 종합적 시책과 대책이 필요한 것이다.

1975년 개방사회를 지향하던 프랑스 우파의 대통령 지스카르(1974-81)때 보사부장관이었던 시몬느 베일은 종교적 관습과 남성위주에서 벗어나 여성의 권리장전을 선언할 때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여성은 남성의 주장이나 의견과 상관없이 자의에 의해 낙태를 선택할 권리를 가진다>

  현재 우리사회는 본격적인 민주적 시장경제의 길을 가고 있다. 에이즈의 위협과 인구폭발 현상이 우리에게도 예외일 수가 없고 세계의 일일생활권에서 살고 있다. 남녀평등과 여성의 권익 신장이 전세계적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지금 한국의 남성들이 인습과 관습을 벗어나 조금만 여성들에게 개방적이고 적극적인 동반자 관계를 설정한다면 낙태문화도 고답적 윤리적 차원에서가 아니고 좀더 개방적이고 발전적 차원에서 여성의 육체와 정신의 보호에 기여할 수 있으리라 본다. 말하자면 낙태의 상대적 개념인 피임을 건전한 성문화의 중요한 요소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2000년대에 실현가능한 유전공학의 장단점을 따지기 이전에, 또 복제인간이 탄생하는 시대가 오기 전에 성문화에서의 낙태가 그 이름에서 오는 부정적 의미를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우리의 남성지배 사회구조가 개선되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