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필홍 외, 『낙태 포르노 인간복제』, 고원, 1999


- 글머리 -  

현대 사회의 여러 가지 윤리 문제들 중에는 낙태, 포르노, 인간 복제, 뇌사, 안락사, 사형제도 따위가 있다. 이 주제들은, 이 책에서는 낙태, 포르노, 인간 복제만 다루고 있지만, 어느 하나 우리가 오늘의 시민 사회 생활을 해 나가는데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으나, 그 어떤 것도 주제에 관심 있는 사람에게 명쾌한 결론이나 정답이나 증명을 딱히 주지 않는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다루어지는 낙태 논쟁, 포르노 논쟁, 인간 복제 논쟁 그 무엇도 과연 논쟁에 그칠 뿐 손에 잡히는 어떤 정형의 해결책을 제시해 주지는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이 논쟁들이 무용하지는 않다. 정답을 주지는 못해도 답에 이르고자 하는 여러 가지 가능성을 우리에게 제시해 주고 있으며 그것으로 이미 가능적 독단을 넘어서서 우리의 이해를 증진시키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철학적 문제는 본래 이런 성격을 갖고 이러한 역할을 하며 또 이것이 철학의 최고의 가치다.

현대 사회 윤리 문제 중 낙태의 찬반 논쟁의 열기만큼 뜨거운 것이 없는 까닭은 많은 이유 중에서도 무엇보다도 낙태가 우리들 모두의 문제 즉 우리들 모두가 당면하게되는 문제라는 점이다. 낙태 허용 입법이 받아들여지는 것이 세계적 법 추세의 대세임에도 불구하고 생명 의학계나 종교, 사회, 정치권에서는 토론의 열기가 여전히 뜨겁다. 포르노(정확히는 prono가 아니라 pronogr-aphy이지만)는 외설과 음란성 사이를 넘나들면서 정의 자체부터가 논란거리이다. 포르노에 대한 우리의 일상적 이해와 문학 일반에 있어서나 법의 해석에 있어서도 서로 차이가 있다. 포르노 논쟁은 인류 기원의 역사와 함께 할만큼 긴 연륜을 가지고 있는데 특히 오늘날의 논쟁은 포르노에 대한 자유주의적 해석의 변호와 이에 맞서는 전통적 공동체주의의 논리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인간 복제 논쟁은 논쟁의 역사는 짧으나 지금 가장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는 속칭 뜨는 이슈다. 이 주제의 특징은 지금까지의 여러 주제 말하자면 낙태나 포르노 등과는 달리 인간 생명 창조의 문제를 직접 간섭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물론 현재 인간 복제가 100% 현실화 된 것은 아니지만) 인간 복제는 神에 대한 人間의 도전이라고 까지 평가되고 있다. 과학발전의 가속도를 의식한다면 그리고 그것이 불러올 수 있는 파장을 생각한다면 도덕의 견제와 균형이 시급하고 절실하다고 아니할 수 없다.

백경 교수는 "한국사회와 낙태문화"에서 낙태를 긍정적 시각에서 바라보면서, 우리 사회에서의 성에 대한 개방적 적극적 교육을 통한 성문화의 양성화를 촉구하고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남녀 모두가 스스로 성행위를 바람직하게 이끌어 갈 수 있는 최상의 사회적 분위기와 공감대가 조성된다고 진단하고 있다. 황선희 교수의 "책임감 가운데의 자유로운 삶"에서 제안하는 성문화사적 접근은 시사적이다. 오늘의 한국사회의 무너진 성윤리를 지켜보면서, 그 해결책을 모색하며, 서구 여러사회에서 피임(contraception)과 인공임신중절(abortion)이 합법화되어 가는 과정을 인간의 자유와 권리의 실현과 연관시켜서 고찰하고 있다. 또 효과적인 성교육을 통한 개인개인의 도덕적 계몽과 여러 가지 주변적 복지책(여성의 노동환경, 미혼모의 사회적 수용, 입양 따위)이 수반되어야 성의 진정한 자율성이 회복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황필홍 교수의 "낙태주의"는 자유주의자들이 전통적으로 지지하고 유지하려고하는 낙태의 변호의 입장을 두 가지 이유로 대변해주고 있다. 첫째는, 한 여성이 갖는 신체에 관한 자기통치적권리(self-governing right)는 무엇보다도 우선하며, 둘째는, 인간이 신뢰의 인간이성(human reason)을 행사함에 있어서 임신자 여성이 가장 적합한 상황에 있기 때문에 낙태권은 여성자신에게 주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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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경,『한국 사회와 낙태 문화』pp.211∼227
 황선희,『책임감 가운데의 자유로운 삶』, pp.229∼269
 
황필홍,『낙태주의』, pp.271∼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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