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배,『낙태의 실태와 관련법규의 개정방향』, 국회 현안분석 제44호, 1992


- 머리말 -

최근의 한 보도에 의하면 우리 나라에서 하루에 4천1백명, 1년에 1백50만명의 낙태가 행하여 지고 있다고 한다. 이런 숫자는 매년 낙태된 태아가 신생아의 두 배를 넘으며, 기혼여성 1천명을 기준으로 하는 유산율로 볼 때 싱가폴과 함께 세계적인 수준에 이르러 우리 나라는 이미 얻은 아기 수출 세계 제1위라는 오명 외에 이제 낙태천국이라는 악명을 추가로 얻게 된 것이다. 이러한 사태의 원인으로는 생명경시풍조, 정부의 산아제한정책, 남아선호사상, 낙태관련법규의 사문화(死文化), 피임방법(避妊方法)에 대한 無知, 성도덕의 문란 이외에도 입시위주교육의 결과로 더욱 심각하여진 청소년의 성문제, 여전한 여성차별상태하에서 여성의 사회참여욕구의 증대, 과소비풍조로 인한 퇴폐문화의 확산, 낙태시술과 관련한 의료윤리의 부재 등이 거론되고 있다.

위와 같은 낙태의 실태는 어느 정도 세계 공통의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우선 세계적으로 약 8억 이상의 여성이 매년 피임을 하고 있으며, 요즈음에는 먹는 낙태약인 프랑스제 RU-486과 미국제 에포스테인이 개발돼 상당한 논란을 일으키고 있으며, 프랑스와 중국은 이미 RU-486의 공식적인 사용을 허락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낙태에서 나타나는 생명경시풍조, 성윤리의 타락, 물질만능주의와 이런 사상들을 은연중에 부추기는 구조적 모순 등은 세계 공통의 현상이라고 볼 수 있으나, 외국에서의 낙태에 대한 태아의 생명우선론자와 여성의 선택우선론자 사이의 치열한 논쟁의 역사와는 달리 우리 나라에서는 낙태가 이렇게 성행할 때까지 한번도 심각한 사회문제로 등장하지 않았다는 것이 한국적인 문제점이라 볼 수 있다.

여기에서 먼저 우리 나라의 낙태의 실태와 낙태관련법규의 내용과 문제점을 알아본 후, 외국의 낙태관련 입법례를 살펴봄으로써 낙태문제에 대한 사회적인 대책과 관련법규의 개정방향을 고찰하려고 한다.


- 낙태의 개념 -

낙태란 태아를 자연의 분만기 이전에 모체 외로 배출하는 행위 또는 태아를 모체 내에서 살해하는 행위를 뜻한다. 낙태와 유사한 개념으로 인공유산, 인공임신중절 등을 들 수 있으며 인공유산은 주로 의학적 용어로 많이 쓰이고 인공임신중절은 법학적 용어로 많이 쓰인다. 모자보건법에서 말하는 인공임신중절수술이란 태아가 모체 밖에서는 생명을 유지할 수 없는 시기에 태아와 그 부속물을 모체 밖으로 배출하는 수술을 말한다. 따라서 모자보건법상의 인공임신중절수술이 형법상의 낙태보다 좁은 개념이 된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일반적으로 보통사람들이 쓰는 용례에 따라, 원하지 않는 임신의 경우 태아를 모체 밖에서는 생존할 수 없는 시기에 인위적으로 배출하거나 태아를 모체내에서 살해하는 의미로서 낙태란 용어를 쓰기로 한다.


- 입법론적 검토 : 문제점에 대한 분석을 대신하여 -

법률상 낙태와 관련된 문제의 핵심은 낙태죄를 전면 폐지할 것인가 아니면 허용할 것인가의 양자택일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어떤 경우에 금지를 하며 또한 어떤 경우에 허용할 것인가의 한계설정에 있다고 하겠다. 따라서 여기서도 존폐론보다는 주로 모자보건법과 관련한 허용한계를 중심으로 논의를 진행시키고자 한다.
  
(1) 낙태죄의 존폐론
낙태죄에 관한 형사통계에서도 보면서도 느꼈을 것이지만 현행형법은 현실성을 외면한 채 지나치게 기본입장만을 제시한 한낮 프로그램적 선언규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낙태죄의 적용실태가 곧바로 낙태죄의 폐지론으로 이어져서는 곤란하다. 이는 낙태죄의 규범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낙태존폐론의 근거를 거론함에 있어서는, 낙태죄 제정 당시의 논의를 살펴보는 것으로 이를 대신하여도 크게 부족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며 또한 참고가 될 것이다. 국회심의과정에서 벌어진 논란은 낙태죄존폐론과 폐지론으로 대립되어 있으므로 여기서도 이러한 식으로 나누어 보기로 한다.

 가) 낙태죄 존치론 ; 존치론의 입장에서는 그 논거로서 인구정책적 고려, 성풍속유지, 사회적 불평등해소, 인간의 존엄성 등을 지적하였다. ① 낙태죄의 기본입법취지는 무엇보다도 인구정책적 관점에 영향을 받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6.25동란으로 인한 인구의 감소와 강대국이 되기 위한 요건으로 제시되고 있다. ② 낙태죄처벌론자는 낙태죄와 성풍속의 관계를 강조하고 있는데, 그 이유로서 첫째 전통적인 도덕율의 유지, 둘째 전시상황을 겪은 신생국가로서 성풍속확립의 필요성, 셋째 간통죄를 처벌하기로 한 이상 성풍속유지의 정신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타당하다는 점 등을 들고 있다. ③ 낙태죄의 처벌이유로서 태아의 생명권이라는 관점도 지적되었다.그리고 특히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헌법적 시각도 언급되었다.

 나) 낙태죄 폐지론 ; 이 견해의 근거로서 ① 앞으로 예상되는 인구증가에 대비하기 위하여 낙태를 허용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출산장려의 문제는 사회복지차원에서 해결하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논거에는 낙태죄의 현실적 불처벌현상도 함께 고려되었다. ② 폐지론자의 주된 관심사는 낙태죄를 통하여 출산을 강요받게 되는 여성들이 처하게 될 사회적 지위의 열악성을 제거하려는 데 있었다. 이와 관련하여서는 낙태가 주로 생존경쟁에 시달리는 근로대중에 있어서 일어나는 사태이며, 국가에서 경제적 정책이나 사회적 정책으로서 근로대중의 복지를 증가시키는 방면을 고려하지 않고, 낙태죄를 형법에 규정하는 것은 국민대중에게 낙태죄라는 커다란 죄악의 낙인을 강요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 것이라는 점도 주장되었다. ③ 기타 낙태를 범죄로 처벌할 경우 영아살해죄 등 파생범죄가 발생할 염려가 있다는 점, 무자격자에 의한 시술이 횡행하게 되어 임부의 생명, 건강에 중대한 침해를 초래하게 된다는 점 등이 강조되었다.

(2) 낙태죄의 존치의 당위성

낙태죄는 특히 범국가적 가족계획사업의 영향을 받아 거의 사문화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 정도이다. 그러나 규범적 관점에서 낙태죄의 존치의 필요성은 부인하기 어렵다. 첫째 태아의 생명에 대한 존중의 당위성이다. 이는 헌법원리와 관련하여 새롭게 강조되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 대법원도 낙태죄의 중요성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즉,「인간의 생명은 수태된 때로부터 시작되는 것이고 회임된 태아는 새로운 존재인 인격의 근원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지니므로 그 자신이 이를 인식하고 있든지 또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는지에 관계없이 침해되지 않도록 보호되어야 함이 헌법 아래에서 국민일반이 지니는 건전한 도의적 감정과 합치되는 바이다(대판 1985.6.11. 84도 1958)」라고 판시한 바 있다. 그리고 현재 우리 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인명경시의 풍조는 보통 이미 출생한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인명경시의 현상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그 뿌리는 이미 출생대기중 또는 생성중인 생명에 대한 경시에서부터 시작되고 있음을 주목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둘째, 낙태현상이 만연되어 있다고 해서 이로부터 낙태죄의 폐지라는 결론이 도출되어서는 안된다. 이는 예컨대 살인행위가 만연되어 있다면 살인죄를 폐지하겠다고 하는 것과 같은 논리이다. 물론 이 현상은 국민 대다수가 낙태죄의 범죄성을 느끼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며, 따라서 비범죄성 관점에서도 이를 폐지해야 한다고 반론을 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낙태죄의 실질적 위법성에 대한 부인이 국민적 합의의 수준에 이르렀는가는 매우 회의적이다. 대법원도 「법규정이 폐지되기 위해서는 그 행위가 사회발전에 따라 전혀 위법하지 않다고 인식되고, 그 처벌이 무가치할 뿐만 아니라 사회정의에 위반될 정도에 이를 때 비로소 가능하다」고 하고 있다. 또한 특히 국가시책에 의한 가족계획은 피임방법에 의하여야 하는 것이지 이를 낙태를 통해서 해결하고자 하는 것은 지극히 위험한 발상이다. 그리고 지금에 이르러서는 오히려 인구증가의 정체현상 및 마이너스 성장현상이 예견되고 있음에 비추어 보더라도 가족계획을 위한 낙태죄폐지론은 그 근거를 잃고 만다. 셋째, 여성의 자기결정권 내지 사회적 지위의 확보라는 점과 관련하여 폐지를 주장하는 것도 부당하고 한편 지극히 소박한 생각이다.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존중되어야 할 기본권인 점은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태아의 생명을 무차별하게 좌우할 수 있는 권리까지 내포하고 있다고 할 수는 없다. 일단 수태된 생명은 독립된 보호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여성의 사회적 지위에 관하여 보더라도, 수천년의 인류역사에 있어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여성이 남성보다 열등한 지위에 있어온 것이 낙태죄의 존재 때문이 아님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임신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부녀의 사회적 지위나 가정내 역할에 있어서의 여러 가지 제약이나 불이익은 낙태죄폐지라는 극단적인 처방이 아니라 여성의 지위향상을 위한 전반적인 사회적 모순점의 제거와 사회복지적 제반시책에 의하여 해결하여야 할 것이다.

 - 맺음말 -

우리 나라의 현행 헌법에는 생명권 보장에 관한 명문규정이 없지만 학설과 판례는 해석론으로 생명권을 헌법상의 기본권으로 인정하고 있다. 또한 생명권은 인간의 권리이므로 분만후의 생명뿐만 아니라 태아의 생명까지도 보호되어야 한다. 이러한 생명권의 관점에서 볼 때 태아의 생명권에 대한 침해인 낙태는 다만 생명권의 한계의 경우, 즉 모체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한 경우에만 허용되어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낙태천국이라는 오명을 얻고 있는 우리 나라의 현상황을 감안할 때, 위와 같은 엄격한 헌법론에만 의존할 수는 없는 실정이며, 위에서 본 바와같은 낙태관련법규의 개정방향을 모색하여야 한다.

한편 낙태문제는 그 본질상 윤리와 법의 경계에 있는 문제로서 위와 같은 법적 대응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구조를 갖기 때문에 무엇보다 먼저 낙태에 대한 일반시민의 의식개혁이 절실하다고 생각한다. 그 의식개혁의 출발점은 모든 인간의 생명권을 존중하는 생명존중사상에 있겠지만 현재 우리 나라에서의 낙태실태를 감안하면 다음과 같은 개선책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우선 날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는 미혼여성의 낙태는 청소년의 성문제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급격한 사회적 변화로 인한 가치관의 혼란속에서 나타나는 성개방과 향락풍조 및 물질주의는 성윤리의 문란을 초래하여 결과적으로 미혼여성의 낙태를 증가시키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청소년에게 유해한 환경의 정화는 물론 各級 學校와 社會敎育機關을 통한 성교육과 상담활동을 활성화하여야 한다. 특히 유흥접객업소 종사자들이 미혼여성 낙태건수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점으로 보아 이들에 대한 상담과 교육도 절실하다.

또한 태아의 성감별 후 낙태가 증가하고 있는 실태에 대한 대책은 1차적으로 남아선호풍조의 배격에 있겠으나, 한편 태아의 성감별과 낙태시술을 담당하고 있는 의사의 의료윤리의 확립으로 실질적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의사들이 모자보건법상의 허용사유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여 낙태시술을 하는 경우가 전체의 5% 이하라는 사실은 의료윤리상의 문제점을 나타내고 있다.

마지막으로 낙태왕국의 오명을 벗기 위하여 근본적으로는 국민의 의식개혁이 필요하겠지만 이와 함께 정부의 사회보장적 측면에서의 노력이 필요하다. 아무리 태아의 생명권을 존중하는 의식이 유포되더라도 현실적으로 사회보장적 도움이 필요한 미혼모와 그 자녀들과 같은 사람들이 외면될 경우에 이들은 어쩔수 없이 가장 손쉬운 방법을 택할 것이기 때문이다.

==================================== 차         례 =======================================

Ⅰ. 머리말(1)

Ⅱ. 낙태의 개념과 실태(3)
 1) 낙태의 개념(3)     2) 낙태의 실태(3)

Ⅲ. 낙태관련법규의 내용과 문제점(7)
 1) 낙태죄(7)   2) 모자보건법(8)     3) 의료법(10)    4) 낙태죄 적용실태(10)
 5) 입법론적 검토-문제점에 대한 분석을 대신하여-(11)
  (1) 낙태죄의 존폐론(12)     (2) 낙태죄의 존치의 당위성(14)  
  (3) 모자보건법의 제문제-낙태허용의 한계-(16)

Ⅳ. 외국의 입법례(23)
 1) 미국(23)     2) 독일(24)     3) 일본(25)

Ⅴ. 맺음말(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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