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경학, 『독일 가톨릭, 교황청에 굴복』, 한겨레 21, 265('99.7.8), p.66


'여성의 권리'와 '교회법에 규정된 생명보호의무' 중 무엇이 우선하는가. 여성의 낙태문제를 놓고 교황청과 갈등을 빚어온 독일 가톨릭교회가 교황의 요구를 받아들여 낙태확인서 발급을 중단하기로 결정함으로써 3년 동안 지속되던 로마교황청과 독일교회간 분열에 종지부를 찍게 됐다.

독일 가톨릭교회는 그동안 여성사제직 신설과 사제의 결혼 허용 등 진보적인 주장으로 로마교황청에 눈엣가시로 여겨졌다. 그러나 독일교회는 교회세와 각종 지원을 통해 바티칸 재정의 20% 이상을 지원하면서 가톨릭 국가 안에서 독자적 영향력을 확보해왔다. 그리고 96년 헬무트 콜 총리의 요청에 따라 교회 안에 270개 낙태상담소를 설치한 뒤 여성들에게 확인서를 발부하기 시작하면서 교황청과 끊임없는 마찰을 빚어왔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지난 6월 17일 독일교회에 낙태확인서 발급중지를 명령하는 최후통첩을 했다. 이는 여성권익을 앞세운 독일 여성단체의 반발과 사회적인 논쟁을 불러왔다.

이에 대해 가톨릭봉사회와 일부 주교들이 동조하면서 이 사건은 지난 1534년 영국왕 헨리 8세기 이혼을 반대하는 교황에 반발해 영국교회의 분리를 몰고 왔던 '수장령' 사태로 발전될 조짐까지 보였다. 그러나 마침내 독일 주교회의가 굴복하면서 이번 사건은 지난 232년 성속간의 갈등으로 로마교황에게 무릎을 끓은 독일황제 그레고리 7세에 이어 '제2의 카노사 굴욕'으로 비유되고 있다. 이 결정으로 독일 여성들은 앞으로 교회가 아닌 정부상담소를 통해 낙태허가를 받아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됐으며 독일교회 역시 독자적인 행보를 걷는 데 상당한 제동이 걸리게 되었다. 가톨릭 봉사단체인 카르타스의 보고에 따르면 1997년 교회상담소를 찾은 12만명 여성 중 2만명이 낙태문제를 상담했고 이중 25%가 교회 허락을 받아 낙태한 것으로 나타났다. 약 3천만명 신자를 가진 독일교회가 현재 교황청과 이견을 보이고 있는 여성사제직 신설과 사제의 결혼문제에 대해 어떤 입장을 나타낼지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