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영희, 『낙태의 실태 및 의식에 관한 연구』, 형사정책연구원, 1991


본 논문은 낙태가 우리사회의 여성의 삶에 어떤 의미를 갖는가를 논하기 위해 쓰여졌다. 즉 여성들이 낙태를 하게 되는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조건은 어떤 것이고, 또 여성의 입장에서 볼 때 낙태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쟁점들은 무엇인가, 그리고 이러한 낙태 논쟁 속에서 여성들은 어떻게 규정되고 있는가를 밝히기 위한 시도였다.

우리사회에서 낙태에 관한 지배적인 담론으로는 법적인 차원과 태아생명에 관한 도덕적 차원, 그리고 이를 지원하는 의학적 차원이 있다. 이 세 차원의 담론은 모두 여자의 성을 가부장제의 모성으로 규정하는 성규범에 입각한 제도로 기존의 성별분업체계를 전제하면서 관념적이고 심리적인 차원에서 여성들의 낙태행위를 규제해 왔다. 그러나 낙태를 공식적으로 허용하지는 않지만, 실제로 낙태를 효과적인 출산조절 방법이 되게 한 제도적 담론으로는 정부의 가족계획정책이 있다. 이 정책은 한국여성들의 재생산행위를 변화시킨 물질적 기반이 되었다는 의미에서 중요하다. 그러나 이 제도 역시 여성을 출산력과 모성이라는 범주에 묶어 두면서 여성들의 재생산 조절을 남편이나 의료기관에 종속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현지조사 자료는 가부장제 성규범에 기반한 우리 문화내의 각 제도가 변화된 사회상황에 적절한 제도적 대응을 못하는 현실이 여성들로 하여금 낙태를 통해 자신의 성과 재생산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게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임신은 여성의 몸 속에서 그리고 몸에 일어나는 현상이고 태어나는 아이의 발달과 양육에 대한 일차적인 책임을 여성이 지는 것이 오늘날 우리의 구체적인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원하지 않는 임신은 기존의 성별분업체계 내에서 여성들이 사회적 참여를 추구하려는 사회적 자유를 재현하고, 여성의 몸에 대한 여성자신의 통제권을 확보한다는 개인적인 자유를 침해한다. 따라서 여러 가지 이유에서 원하지 않는 임신을 조절한 적절한 방법이 없을 경우에 여성들은 낙태를 통해 이를 통제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러므로 본 논문은 사회적 개입을 통한 모성의 사회화와 여성들의 출산조절 선택 및 성지식 획득을 규제했던 물질적, 규범적 조건들을 바꾸는 것에서부터 우리의 낙태 논쟁은 시작되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Ⅰ. 서론

낙태에 관한 지배적인 사회적 담론(discourse)은 기본적으로 그 사회의 정치적 문화적 영향으로부터 벗어날 수가 없다. 낙태를 비롯한 여성의 재생산행위(reproduction)은 단지 자연의 순리에 따라 여자가 아이를 잉태하고 낳는, 혹은 없애는 여성의 임의적인 행위가 아니라 여성들이 자신을 둘러싼 제반 사회관계 속에서 자신의 재생산 능력을 주체적이고 의식적인 차원에서 적응시키고 갈등한 산물로 간주하여야 한다. 본 논문은 낙태를 하는 생물학적 재생산이 보유자인 여성들의 입장에서 낙태에 관한 여성주의 시각을 구축하기 위한 하나의 시도로 쓰여지고 있다. 본 논문에서는 여성들의 출산조절 방법인 낙태현상이 어떠한 사회관계와 맞물려 사회적, 정치적 그리고 문화적 규범(통제)체제 속에서 통합되어 있는가를 논하고자 한다.

이 논문은 낙태를 둘러싼 한국사회의 지배담론이 무엇이며, 지배적인 담론이 기반하는 사회관계는 어떤 것인가를 밝히는 것이다. 그리고 인류학적 현지조사에서 만난 여성들의 사례들을 통해 이러한 지배담론이 어떠한 방식으로 여성들의 낙태시술에 구체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가를 보고자 한다. 그래서 성규범과 낙태의 물적 그리고 사회적 기반이 어떻게 서로 관련되어 있으며, 또 이반되어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하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규범과 현실의 이반이 낙태가 시행되는 몸의 주체인 여성들에게는 어떤 식으로 영향을 주는지, 또 여성의 사회적 경제적 참여가 늘어나는 새로운 사회구조 속에서 낙태는 어떻게 인식되어야 하는지를 여성주의 인류학의(feminist anthropology) 시각에서 모색하고자 한다.


 Ⅱ. 낙태와 출산조절

Ⅲ. 낙태에 관한 한국사회의 지배 담론

낙태는 우리사회에서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광범위하게 시행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낙태는 모자보건법에 근거한 몇가지 사유에 한정, 허용되고 있지만 거의 모든 의료기관에서 시술하고 있으며, 산부인과 개업의의 주요한 수입원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에 속할 정도이다. 어쨌든, 낙태는 원하지 않는 임신을 조절하는 일종의 효과적인 출산방지 방법으로 현재 광범하게 인정되고 있다. 또한 낙태를 시술하는 많은 여성들은 시술시 사회적 심리적 갈등을 경험하긴 하지만 낙태가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사회에서 낙태를 규제하고, 낙태 시술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지배 제도는 법과 출산조절 방법의 분배와 의료 서비스 체계 그리고 정부의 출산정책이다. 아래에서는 이들 각 제도들이 어떠한 기반위에서 각각의 제도적 규제력을 구축하고 행사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겠다.

1. 성풍속 유지 기제로서의 낙태법

현행 낙태법이 초기에 입법화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논거가 되었던 측면은 성풍속의 유지였다. 낙태법 초안의 배경에는 낙태를 살인과 비견될 수 있는 범죄로 인정하는 인도주의적인 측면과 또 인구학적 차원에서 어느 정도 힘이 있는 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적정 수의 인구가 필요하다는 인구정책적 문제의식이 있었다. 하지만 실제 낙태법이 입법화된 1952년의 상황에서 가장 결정적인 근거로 제시된 것은 성풍속 유지의 측면이였다. 이에 대해 신동운 교수는 첫째 전통적인 도덕률을 유지해야 하고, 둘째, 전시상황을 겪은 신생 독립 국가에 성풍속 확립 의지가 필요하고, 셋째로는 간통죄를 처벌하기로 결의했기 때문에 성풍속 유지라는 틀 속에서 낙태의 처벌이 논리적이라는 이유가 낙태법이 입법화된 주 근거가 기술하고 있다.

낙태를 성풍속 문란과 연관시키는 이러한 사고는 우리 사회에서 낙태를 논하는 기본 틀을 형성한다. 즉 낙태를 법적으로 규제함으로써 혼인밖에서 임신한 여성들이 낙태로 그 해결을 찾는 부도덕한 성을 통제할 수 있어서 전통적인 성풍속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의미하는 혼인 밖의 성은 미혼여성의 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여성의 성은 사회 도덕의 기준이라는 규범의식이 전제되어 있다. 따라서 낙태법에서는 성규범 이탈로 발생한 미혼여성의 도덕적인 방종과 무책임이 크게 부각되고 있다. 하지만 낙태에 관한 이런 사고는 실제로 낙태가 누구에 의해 왜 우리사회에서 광범하게 시술되고 있는가하는 현실을 거의 무시한다. 낙태법은 마치 낙태가 주로 미혼여성들에 의해 시술되고, 기혼 여성들은 낙태를 통해 원하지 않은 임신조절을 거의 하지 않는다는 현실을 전제한다. 하지만 낙태는 우리사회에서는 아직도 미혼여성 보다는 기혼여성들에 의해 더 많이 시행되고 있고 역사적으로도 그리고 비교문화적으로도 그렇다.

그러나 오늘날 미혼여성들의 낙태 역시 광범하게 시술되고 있고 또한 증가되고 있다. 이런 현실 속에서도 낙태 금지법에 함의되어 있는 낙태와 미혼여성의 이탈적인 성을 연관시키는 규범적 사고 역시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영향력을 갖는다. 이는 재생산과 성의 분리가 일어나고 있지만, 동시에 재생산과 관련되지 않은 여성의 성은 사회문화적 그리고 심리적 규제의 대상이 되는 '부자연스러운 성'이라는 규범적 재제력이 여전히 존재함을 보여준다. 여성들은 "혼전에 낙태할 때는 건강을 해친다는 생각이나 죄의식 보다는 사회적으로 창피하고 남들이 알면 어떻게 할까"하는 두려움 때문에 병원에서 간호사나 의사에게 더 위축되고 심적 부담이 컸었다. 그런데 결혼 후 낙태시는 "내가 조심성이 없었다는 생각이 있기 했지만 당당해졌다"고 말한다. 이러한 담론에서도 낙태는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혼인하지 않은 여성이 성행위를 했다는 사실 때문에 문제가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성에 관한 사회심리적인 통제를 통한 규제는 여성의 성이 합법화되는 결혼이라는 제도 내에서 일어나는 광범한 낙태에 대해서는 전혀 기능하지 않는다. 이는 낙태법이 낙태 현상 그 자체를 문제 삼는다기 보다는 혼인 밖의 여성의 성을 규제하겠다는 성통제 규범임을 보여준다 하겠다.


2. 태아 생명과 태아의 환자화

여성의 성통제 측면을 강조하던 낙태법은 여성의 성, 특히 기혼여성의 성을 재생산과 분리하는 가족계획정책이 60년대부터 시행되고, 70년대 모자보건법이 제정되어 부분적인 차원에서 합법적인 낙태가 허용되면서 실제 현상과의 괴리가 더욱 커졌다. 즉 결혼 내에서 광범하게 나타나는 낙태에 대해서는 그 규제력을 완전히 상실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법적 규제와 상관없이 낙태가 원하지 않는 임신을 조절하는 방법으로 정착케 되었고, 기존의 낙태법은 사문화되어 폐기되던가 아니면 새로운 담론으로의 변형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낙태에 관한 규범적 담론은 여전히 성서적으로는 미혼 여성들의 성을 통제하는 역할을 수행하지만, 산업화를 통해 여성들의 사회참여가 증가하고 서구화의 영향으로 성규범 바뀌면서 낙태를 금지하는 현실적 규제력을 행사할 수가 없었다. 대신 새로운 과학적 논의 양식이 첨가 되었는데, 그것이 최근에 논의되는 태아생명에 관한 담론이다.

1985년 대법원은 낙태된 태아가 살아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방치하여 죽게한 의사를 형사 처벌하면서, 법적으로 보호하는 인간의 생명 범주에 태아를 포함했다.

"인간의 생명은 잉태된 때로부터 시작되는 것이고 회임된 태아는 새로운 존재와 인격의 근원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지니므로 그 자신이 이를 인식하고 있던지 또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는지에 관계없이 침해되지 않도록 보호되어야 함이 헌법 아래에서 국민 일반이 지니는 건전한 도의적 감정과 합치되는 바이다"(1985.6.11. 81도 1958 대법원판례집 33권 형497(500)).

 즉 낙태법의 존치는 그 논거가 여성의 성 통제를 통한 사회의 규범준수라는 담론에서 이제 태아의 생명을 보호하여 생명과 인간을 중히 여기는 인권 준수에 관한 규범으로 변화되고 있다. 태아에 관한 새로운 생명 담론은 매우 추상적이고 모호한 수준이다. 그러나 요즘 일반 여성들에게서 매우 모호하고 모순적인 형태로나마 이러한 담론의 영향력이 드러나고 있다. 여성들은 "기형아를 낳느니,  ...상황에서는 나는 낙태를 할 것이다.", 혹은 "이제 애를 안낳을 건데, 다시 임신되어 낙태하게 될까봐 두렵다"라는 말을 하면서, 동시에 "설사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낙태를 했지만, 생명을 없애는 낙태는 죄이다. 그래서 죄의식을 느낀다", 혹은 "태아는 생명체이기 때문에 낙태하면 안된다"라는 이야기를 한다. 이러한 모순적 진술에 대해 여성들은 '이상적으로는 생명을 보호해야 하지만 자신의 각각의 처지는 낙태를 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이는 생명 담론이 우리 사회에 도입되고는 있지만 아직까지는 우리 사회에서 낙태를 실제론적으로 규제하는 이론적 현실적 틀이 되고 있지는 않다는 진술이기도 하다.

본고(註: 최근 여러 논자들은 여성들의 이러한 생명론 혹은 죄의식은 태아의 생명을 하나의 인격체로 보는 한국의 전통적인 생명 사상에 기인하고 있고, 이를 우리 전통의 도덕성이라 논하기도 한다. 그러나 최근에 대두하고 있는 태아 생명론에 대해, 본고는 다른 견해를 취한다. 태아를 중히 여기는 우리의 전통사상은 최근에 대두하고 있는 개별적인 인격체로서 태아생명을 존중하는 시각과는 근본적으로 그 뿌리가 다르다고 본다. 우리의 전통적인 윤리규범은 집단이나 가족중심이였지, 개인중심이 아니였다. 따라서 개인의 권리는 가족이나 사회의 권리에 종속되었고, 문헌들은 부모가 자녀의 생사에 권리는 행사하는 사례 등을 보여주기도 한다. 출산이나 태아는 가족의 책임이며 권리하에 있는 사회적인 문제였지, 종교적이며 철학적인 것이 아니였다. 따라서 낙태된 태아에 대한 우리 문화의 정서는 가족 혹은 집단 성원이 될 수 있었던 가능성에 대한 상실에서 오는 회한 혹은 한으로 표현되는 살아있는 사람들(여성 혹은 가족) 중심의 느낌이였지, 개별적이고 독립적인 영혼으로 간주되는 태아 중심에서 오는 죄의식이나 죄책감과는 다르다는 생각이다)는 태아 생명과 죄의식에 대한 최근 우리 사회의 담론은 개별적 영혼의 개념을 지닌 서구의 인간관의 영향, 특히 미국 낙태 논쟁의 영향이라 본다. 현재로서는 한국사회의 태아생명 논의가 어떤 기원과 경로로 활발해지고 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우리사회에서 태아에 관한 의학적 지식과 태아를 경험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의학적 기술이 보급되고 산전 관리에 대한 중요성이 사회화되면서 태아의 생명에 관한 논의가 구체성을 띠어가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은 태아를 통해 여성의 몸이 규제되는 새로운 권력의 장이 되고 있다. 즉, 신생아학이나 초음파에 의한 태아 영상화의 발전, 산전진단, 인공수정, 태아모니터 기술, 그리고 태아진단학 등의 눈부신 발전이 태아를 의료의 대상으로 끌어 들이면서 태아에게 의학적 의미의 인성(personhood)를 확장시키고 있다. 게다가 현재 의료기관에서 시술되는 낙태 장면이 모니터화 될 수 있게 되면서 낙태가 인격적인 개인인 태아 생명을 파괴하는 것으로 일반인들에게 전달되기도 한다.

그러나 아직 우리사회에서는 이러한 의학적 담론이 제시하는 태아의 형상화된 사회관계를 비판적으로 읽어내려는 대응은 거의 없다. 즉 태아는 영향을 공급하는 탯줄, 여자의 자궁과 몸이 없이 그 자체로서는 아무것도 경험할 수 없다는 것이나, 영상적 이미지로 재현되는 태아의 이미지에 내재하는 왜곡을 고려하지 않는다. 이제 임신에 대한 관리가 여성이나 가족의 영역에서 산부인과 전문의의 영역으로 넘어가고 있고, 임산부들이 의료기술 장치에 종속되면서 태아중심적인 문화가 형성되고 있다. 이런 상황은 태아와 여성의 몸을 포섭한 의료의 담론 속에서 생물학적 규정성을 지닌 모성이라는 가부장제 사회 규범이 새로운 형태로 재구축되고 관철되는 또 다른 계기를 의료속에서 창출한다.


3. 출산조절에 관한 국가정책 및 써비스 분배 체계

사회적 환경은 여성의 출산조절 방법에 물질적 기반을 제공한다. 여기에 관여되는 중요한 것으로는 국가정책 그리고 의료의 접근성을 들 수 있겠다. 서구에서 출산조절의 사회적 수용은 성과 재생산에 관한 여성들의 자기 결정권 운동을 통해 사회내에서 쟁취, 수용, 발전되어 왔다. 그러나 우리사회에는 여성의 재생산을 둘러싼 제반 정치적 억압을 타파하려는 여성들의 조직적 운동이나 투쟁은 없었다. 우리사회에서 기혼여성들이 선택하고 있는 출산조절 방법들은 조직화된 여성들의 요구에 의해서라기 보다, 국가가 근대화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근대화를 수월하게 수행케하는 수단으로써 인구조절책을 채택하면서 주어진 것들이다. 60년대부터 국가적인 차원에서 가족내 자녀수를 조절한다는 가족계획정책은 여성의 입장에서 봤을 때 혼인내에서 성과 재생산의 분리를 사회적으로 인정한 최초의 공식적인 담론인 동시에 거기에 상응하는 물적기반을 국가가 제공한 실질적인 출산조절 서비스 체계였다.

한국사회에 낙태가 만연한 사회적 이유로 많은 사람들은 가족계획 정책의 시행을 든다. 즉 '애를 적게 낳자', 혹은 '애를 그만 낳으라'는 국가적 차원의 홍보와 여러 정책적 지원이 원하지 않는 임신이나 합법적이지 않은 임신을 낙태하는 법적 근거를 제공했고, 태아 및 인간 생명에 대한 경시사상을 국민에게 주입시켰다는 것이다. 즉 미혼이거나 기혼인 여성들이 아무런 죄의식이나 책임감 없이 정부의 가족계획 정책하에서 산아제한의 한 방법으로 낙태를 사용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논의는 기본적으로 여성의 출산조절이라는 문제를 여성들이 주체적으로 자신의 삶이나 사회관계를 조직화하는 방법으로 조명하기 보다는, 여성들을 단순하게 사회제도의 종속자 혹은 '사회적 유아'로 보는 남성중심적 그리고 제도우위적 시각을 노정하는 것이다. 본 논문은 이제까지 한국사회에서 동의어로 사용되어온 가족계획의 '인구조절'과 재생산 담당자인 여성이 주체가 되어 자신의 재생산을 통제하는 '출산조절(산아제한, birth control)'를 두 개의 다른 정치적 실천으로 간주한다.

인구조절은 근대화의 한 프로그램으로 경제나 교육 등 사회의 제반자원이 많은 인구를 부양할 수 없다는 논리하에서 실시되었다. 이 인구조절책은 여러 산아제한 혹은 피임방법을 보급하고 제공하여 왔지만, 이것은 여자들의 재생산 사회관계에 대한 전반적인 고찰이나 여성의 출산조절 욕구를 수용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된 것이 아니다. 단지 기존의 남녀 성별체계의 구조를 그대로 둔 채 여성들에게 근대적인 출산행위를 실천케하는 것이였다. 따라서 가족계획은 재생산 담당자로서의 여성을 '적은 수의 자녀를 잘 기르는' 근대적 모성으로 새롭게 규정했지만, 여성들의 출산조절의 자율성을 신장하는 방법으로 진행되지는 않았다.

가족계획 정책에서 보는 여성의 재생산은 사회가 결정하는 인구 재생산을 의미하는 것이였고, 사회가 보는 범주로서의 여성은 역사적으로 문화적으로 규정된 모성을 의미했다. 따라서 인구조절로서의 가족계획 사업은 사회적인 차원에서 여성의 출산력을 통제하는 방식으로 전개되었을 뿐, 출산 주체자가 자신의 재생산 능력에 대한 개인적인 통제를 증진시키는 방향으로 전개, 발전되지는 않았다. 개인의 권리의 신장이 근대성의 핵심을 이루는 서구와 달리 집합적 혹은 제도적 생산성의 증진이 근대화과정의 중추를 이루었던 우리 사회에서는 여성의 출산력 통제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인구조절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근대화의 한 프로그램으로 진행되었다. 따라서 국가에서 추천한 출산조절 방법은 의료기관에 종속되어 수동적인 수혜자가 될 수밖에 없는 영구피임 방법인 난관수술이나 자궁내 장치(IUP), 혹은 남성에게 의존해야 하는 콘돔이 主였다. 그러나 여성중심의 출산조절 자유를 쟁취하려는 사회적 시도가 전혀 없었던 우리사회에서는 과잉인구를 조절하고 질적으로 관리된 인구를 재생산한다는 경제학적 그리고 우생학적 차원의 인구정책은 출산조절과 아무런 구분없이 일반인들에 의해 사용되고 수용되었다(註: 가구경제가 중심이 되는 전산업사회에서는 높은 출산력이 사회적으로 권장수용되었던 반면에 산업사회에 들어오면서 낮은 출산력이 권장되는 새로운 경제적 사회적 토대가 형성되기 시작한다. 산업사회에서의 도시화 그리고 임금 노동자화는 전통적 가구경제를 해체시키고, 자녀들이 기여하는 경제적 기여도를 감소시켰다. 대신 도시화는 도시의 임금으로 생활을 해야하고 또 아이들을 도시의 직업인으로 교육시키기 위한 재생산비가 가정경제에 새로운 부담이 되는 상황을 맞게 되면서 모든 계층에 소자녀의 욕구를 초래했다. 이러한 필요성과 욕구를 갖는 가구에서 소자녀 가족과 가정 복지라는 이념을 내세운 한국 가족계획사업은 근대화의 한 프로그램으로 효과적인 성과를 거둘 수가 있었다).

가족계획은 출산과 성의 분리를 함의하고 있었지만 이는 결혼이 매개된 여성의 성과 재생산에 국한되어 있었다. 가족계획 정책은 미혼여성의 성은 부자연스러운 것이고 그들은 무성적이여야 한다는 기존의 성규범 위에 구축되어 있었다. 이런 의미에서 소자녀 출산을 사회적으로 강제했던 가족계획 정책은 기혼여성들에게 자녀수 조절을 위해서는 낙태 역시 한 방법으로 선택케하는 사회적 근거를 제공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전통적인 가부장제 규범 위에서 시행된 가족계획 정책은 변화된 사회상황 속에서 혼인이 매개되지 않은 채 원하지 않은 임신을 할 수밖에 없는 많은 여성들에게 적절한 성교육이나 출산조절 써비스를 제공한 어떤 채널도 제공하지 않았다. 그로 말미암아 원하지 않은 임신은 성적 방종의 결과라는 사회적인 비난을 받으면서 계속되는 낙태로 해결될 수밖에 없었고, 이는 많은 여성들의 육체적 정신적 건강을 해치는 결과를 초래했다.


Ⅳ. 현지조사에 나타난 여성의 삶과 낙태

낙태를 하는 사람들이 낙태를 보는 기본적인 시각은 원하지 않는 출산을 조절하는 행위이다. 이러한 여성들의 시각에 대해 낙태를 반대 혹은 비난하는 사람들은 '책임지지 못할 행위를 행한 여성들의 무책임성과 성적 방종'으로 이 문제를 바라본다. 이러한 비난에는 여성의 재생산과 성은 여성개인의 책임과 권한 내에서 행사되는 여성 개인의 영역이라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그러나 여성의 재생산이나 성은 사회가 규정한 사회관계 내에서 사회적 적합성을 갖는 것이고, 낙태는 여성들이 이러한 사회규범 속에서 자기자신을 사회규범에 적응시키는 하나의 방법이다. 여성은 단지 자연의 순리에 따라 임신을 하고 출산을 하는 것이 아니다. 여성은 그들을 둘러싼 물질적 조건(피임기술, 그것의 접근가능성, 의료자원의 배분과 재정적 능력, 여성의 사회적 참여, 경제상태 등)과 사회적 관계망(배우자나 성적 파트너, 기존 자녀의 수와 성별, 친족,이웃, 가족성원, 피임기술 정보 제공자 및 의료상담자, 고용자, 교회, 국가 등)속에서 그들의 재생산 과정의 한계를 설정 당하면서 임신하고 출산한다.

필자가 1984∼1987년 농촌 현지조사시 만난 부인들은 적당한 피임방법이 없었던 1960년대 1970년대 초기에 자신들의 출산력을 조절하기 위해 어떤 노력들을 했는가를 기술하곤 했다. 출산조절의 방법을 이용하는데는 여성들의 사회경제적 요인이나 근대적 의식이 영향을 주기는 하지만, 사회경제적 차별성이 생물학적 여성의 조건에 의해 여성의 삶이 규정당한다고 인식하는데 큰 영향을 주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들은 끊임없이 되풀이 되는 임신과 자녀양육으로부터 운명을 관리하기 위해 공식적 비공식적 의료 채널을 이용하여 서너번의 낙태를 시도했던 경험을 갖고 있었다. 게다가 외국에서 들어 왔다는 피임약이나 통경제 등을 사용한 경험, 그리고 애를 뗄 수 있다고 구전으로 전해지는 민속방법인 약초를 달여 먹거나, 간장 그리고 엿기름을 먹는 등 다양한 방법을 사용하면서, 40대 50대에 이르고 있었다. 자신의 출산력을 통제할 수 있는 다른 대안이 없었기 때문에 그 외에도 심한 노동을 하거나, 나무에서 떨어지거나, 언덕에서 구르는 등 주위에서 얻은 정보들에 이존하여 위험한 유산 시도들을 하곤 했었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가 적은 수의 자녀관을 홍보하면서 여성들에게 제공한 가족계획 서비스 사업은 생물학적 재생산의 운명을 극복하려는 이들의 노력을 한결 수월하게 만들었다.

최근에 실시된 여러 실태조사는 우리나라 여성들의 높은 낙태(인공유산)율을 보여준다. 1989년에 실시한 농촌지역 여성들의 건강에 관한 조사는 조사여성 565명 중 32%가 낙태 경험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고(도시지역은 53%), 인구보건연구원의 자료는 52%, 형사정책연구원의 자료는 36%(심영희, 발표자료)가 낙태를 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는 1990년 P시에서 행한 현지조사 자료를 바탕으로 여성들의 삶 속에 낙태가 어떻게 맥락지어 지는가를 제시하고자 한다. 중산층 여성들인 경우에 30명 중 20명이 낙태를 했었다고 대답했고, 일하는 여성(혼전에는 모두 생산직 노동의 경험을 갖고 있다)들인 경우는 14명 중 10명이 낙태의 경험이 있다고 대답했다. 이 두 집단에서 보이는 낙태 현상은 이들의 삶의 기반이 다른 것 만큼이나 낙태를 경험하는 이유와 경로가 다르다. 이들의 경험은 낙태가 얼마나 다른 사회경제적 관계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지를 보여주고, 또 성통제 규범에 기반하는 출산조절 방법의 사회적 분배체계가 우리사회 여성들의 새로운 삶의 양식과 얼마나 이반되어 있는지를 보여준다.

중산층 전업 주부 집단의 낙태는 대부분 결혼 후 일시적 피임의 실패로 원하지 않는 임신이 됐을 때, 더 이상 자녀를 원하지 않아서, 자녀를 양육할 사회경제적 형편이 못되기 때문에 여성의 건강이 안좋아서, 혹은 감기약 등을 먹어서 기형을 낳을까봐, 그리고 태아감별을 했더니 여자아이여서 등의 이유로 시술된다. 그리고 이들은 결혼전의 낙태에 대해서는 사실 여부를 분명하게 밝히지는 않지만, 결혼 후 이들이 시술한 낙태는 성 규범이나 모성 역할에 전혀 모순되는 행위가 아니라고 인식하고 있다. 즉 이들은 그들 가구의 소득으로는 재생산비의 충원이 어려워서 또 적은 수의 자녀에게 질적으로 우수한 보살핌을 주기 위하여, 그리고 가계를 이을 아들을 낳기 위해 낙태를 선택한다. 물론 여기에는 많은 수의 자녀를 낳는 행위 그리고 양육하는 부담이 여자의 몫인 상황하에서 적은 수의 자녀를 낳겠다는 여성들의 욕구가 결합되기도 한다. 하지만 중산층 주부들의 낙태 선택은 여성이 자신의 삶을 위해 생물학적 운명을 조절하겠다는 차원 보다는 남편이나 다른 가부장제 사회관계에 종속된 조건 속에서 기존의 성별 분업체계를 새로운 사회 경제적인 상황에 재적용시키는 적극적인 방안의 모색 결과이다.


반면에 일하는 기혼 여성들인 경우는 낙태 및 재생산에 관한 물적 기반 자체가 달라지기 때문에 혼전 낙태니 혼후 낙태니 하는 문제가 여기서는 적용이 되지 않는다. 우선 대부분의 일하는 여성들은 동거로부터 그들의 결혼 생활을 시작한다. '같이 벌어 한번 잘해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하는 동거는 이들에게 두 개인의 경제적, 사회적, 정서적, 성적 결합과 책임을 의미하는 것이지만, 이들은 전통적인 규범에 준하는 결합 과정을 받는 것은 아니다. 이들은 애들을 낳고 나서 결혼식을 했거나, 아직도 결혼식을 올리지 않은 상태에서 같이 사는데, 이들의 결합은 처음부터 사회적, 법적 혹은 가족의 인정을 기반으로 시작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동거생활 역시 기존의 성별 분업체계 위에서 유지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결혼에서와 같은 남녀관계 그리고 역할분담 구조를 갖는다. 이제 생산직 노동계층의 이런 동거혼은 어느 정도 동료나 친지들에게 이해되어지고 현실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이들의 동거생활이란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식을 올리지 않았고 살림살이가 허술할 뿐이지 그들에게 결혼생활과 같다.

이들의 동거는 남녀 모두가 직작생활을 하면서 시작된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이들에게 성 지식이나 임신 조절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는 제도적인 채널은 없다. 게다가 제도적인 혼인을 하지 않은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피임에 대해 누구에게 물어본다거나 준비를 하는 것 자체가 문화적으로 금기시된다. 따라서 성은 '남자가 주도하는 것'이라는 지배 성규범하에서 남자가 피임을 하지 않는 한 여성들은 동거가 시작되면 임신이 되고, 상황은 곧 낙태를 하는가 아니면 여자가 회사를 그만두고 애를 낳는 상황으로 전개된다. 실제로 이들이 남녀관계를 시작하면서 피임 방법을 사용하거나 임신 가능성에 대해 신경을 쓴 경우는 한 사례도 없었다. 보통 피임법에 대해서 알고 있거나 피임에 신경을 쓴다는 사실 자체가 '순진하지 않은 여자' 혹은 '이미 성경험이 있는 여자'로 오인될 소지가 있고, 또 실제로 자세하고 정확하게 알고 있지 못하다. 그래서 사후에 걱정이 되어 임신을 막는 약(통경제)을 사먹는 등의 소극적 조처를 취하지만, 동거를 시작하면서 곧바로 피임을 하는 여성은 거의 없다. 이들은 출산조절 방법에 관한 지식이나 정보 뿐만 아니라 여성의 재생산 몸에 관한 지식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동거생활을 시작한다.

14명의 사례 중 낙태를 하지 않은 여성은 임신이 되자 두 자녀를 계속하여 낳고 사망한 경우, 그리고 불임으로 8년간을 고생한 여성, 그리고 딸 하나를 낳고 사망한 경우, 그리고 불임으로 8년간을 고생한 여성, 그리고 자연유산이 수도 없이 되다 35세에 딸을 하나 낳고 남편에게 이끌려서 영구불임 수술을 한 여성과, 남편 자신이 애를 하나 이상 원하지 않기 때문에 철저히 피임한다는 다섯 사례 뿐이었다.

그외 아홉 사례가 낙태의 경험을 갖고 있는데, 첫애 낳기 전에 낙태를 했던 여성이 4명이었고, 다섯은 모두 더 이상 자녀를 원하지 않거나 아직은 하나 이상을 키울 수 있는 경제력이 없고 또 여자가 자녀를 양육할 형편이 못되기 때문에 낙태를 했다. 첫 임신을 인공유산으로 끝낸 경우는 계속 일을 가져야하기 때문에 아이를 낳을 수가 없어 수술할 두 경우이다. 자녀의 임신과 출산은 동거관계가 공식화되고 지속되는 가장 확실한 계기가 되는데, 임신 때문에 남편과 계속 살게 되었다고 기술한 사례도 4명이나 되었고, 남편 측에서 여자가 임신되었기 때문에 책임감에서 살게 되었다고 말한 경우도 3명이나 되었다.

우리사회에서의 낙태는 모자보건이나 근친상간과 같은 보건학적이고 윤리적인 이유보다는 사회경제적 그리고 문화적 이유 때문에 더 많이 시술되고 있다. 즉, '더 이상 애를 낳지 않겠다' 혹은 '자녀를 건전한 시민으로 키울 재생산비를 충원할 수 없다'는 이유 때문에 낙태가 기혼여성들 사이에서 광범하게 행해진다. 그리고 우리 사회가 갖는 여성의 성에 관한 문화적 규제력은 미혼여성들의 성을 낙태로 귀결될 수 밖에 없게 만드는 중요한 원인이다. 산업화 과정은 여성들을 경제의 공석부문 내로 끌어내면서 여성들에게 규범적 영향력을 행사했던 기존의 가족 혹은 기타 사회관계에 변화를 야기했고, 서구화를 지향하는 근대화는 남녀관계에 관한 광범한 성규범의 변화를 가져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문화적 규범은 여전히 미혼여성의 성을 금기시하여 미혼여성들이 성이나 피임에 관한 정보와 서비스에 접할 기회 자체를 추구하지 못하게 한다. 따라서 우리 사회에 만연한 낙태는 개인적인 차원의 문제에서 유래한다기 보다는 우리의 현실과 여성의 성에 관한 우리 문화 규범과의 괴리에서 유래하는 제도적인 산물이다.


낙태를 경험한 여성들은 낙태를 두렵고, 기분 나쁘고, 고통스럽고, 걱정스러운 것으로 인식한다. 낙태는 여성의 몸에 가해지는 충격이고 외부적 힘의 개입이다. 낙태 경험은 여성들에게 심리적 그리고 신체적 무력감을 경험하게 만드는데, 낙태실에서 느끼는 심리적 억압, 위압감, 수치심과 두려움은 여성들에게 여성 신체가 갖는 생물학적 운명을 각인시키고, 이로 인한 신체적 손상에 대해 걱정하게 만든다. 낙태 후 여성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보건학적 차원에서의 신체적 손상이다. 즉 낙태가 여성의 몸에 해롭다는 것인데, 많은 여성들이 낙태 후 "건강이 나빠졌다", "기억력이 감소되었다", "허리가 아프다", "자궁암에 걸릴까 두렵다"는 걱정들을 한다. 또한, 낙태는 출산과 달리 본인의 의지에 의해 여성 몸 내부에서 비생산적으로 처리된 비사회화된 임신이라 간주되기 때문에 낙태 후 가족이나 친척들로부터 정서적, 물질적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것이 일반적인 경향이다. 여성의 몸에 가해지는 위와 같은 여러 불이익 때문에 출산조절 방법으로서의 낙태는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나 이런 심리적, 사회적, 신체적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현 상황에서 여성들이 원하지 않은 임신을 통제할 수 있는 다른 대안이 부족하기 때문에 낙태를 시술케 되는 것이다.

가부장적 성규범과 여성의 성(性)에 대한 뿌리 깊은 이중성은 원하지 않은 임신을 예방하여 낙태에 이르지 않아도 되는 경로를 사회적으로 차단한다. 이 이중성이란 여성들에게 성에 대한 무지와 수동성을 기대하는 사회문화적 관습 때문에 피임에 대한 적극적인 지식을 여성들이 가지는 것을 질시하는 동시에 남성들은 생물학적으로 공격적이고 억제할 수 없는 성적 충동이 있기 때문에 피임에 대한 적극적인 지식을 여성들이 가지는 것을 질시하는 동시에 남성들은 생물학적으로 공격적이고 억제할 수 없는 성적 충동이 있기 때문에 피임을 책임 질 수 없으니 여자가 알아서 해야 된다는 모순적인 사회 분위기를 의미한다. 게다가 이러한 가부장적 성이데올로기는 적극적인 성교육을 시행할 수 없게 만들고, 많은 여성들이 원하고 관심 갖는 출산조절 방법을 비공식적이거나 사적인 것으로 만든다. 그 결과 원하지 않은 임신은 낙태로 해결될 수 밖에 없고, 이는 여성의 건강악화라는 악순환을 낳는다. 그러므로 낙태에 관한 여성의 구체적 현실은 여성 건강의 차원에서 '어떻게 여성들이 낙태가 아닌 안전하고 효과적인 출산조절 방법에 접근할 수 있을까'가 낙태 허용 가부에 우선하여 논의되어야 함을 시사한다 하겠다.

 

Ⅴ. 결론

이 논문은 낙태가 우리사회의 여성의 삶에 어떤 의미를 갖는가를 논하기 위해 쓰여졌다. 즉 여성들이 낙태를 하게 되는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조건은 어떤 것이고, 또 여성의 입장에서 볼 때 낙태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쟁점들은 무엇인가, 그리고 이러한 낙태 논쟁 속에서 여성들은 어떻게 규정되고 있는 가를 밝히기 위한 시도였다.

우리사회에서 낙태에 관한 지배적인 담론으로는 법적인 차원과 태아생명에 관한 도덕적 차원, 그리고 이를 지원하는 의학적 차원이 있다. 이 세 차원의 담론은 모두 여자의 성을 가부장제의 모성으로 규정하는 성규범에 입각한 제도로 기존의 성별분업체계를 전제하면서 관념적이고 심리적인 차원에서 여성들의 낙태행위를 규제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성통제 규범에도 불구하고, 도시화, 산업화, 여성들의 임금노동자화는 사회적, 심리적 갈등을 동반하면서 출산조절 방법으로 낙태를 실행하는 사회경제적 기반을 제공하고 있다.

낙태를 공식적으로 허용하지는 않지만 실제로 낙태가 효과적인 출산조절 방법으로 광범하게 이용되는 배경에는 정부의 가족계획정책이 있다. 가족계획정책은 기혼여성들의 출산력을 통제하기 위해 국가가 이데올로기 장치와 행정력 그리고 기술 제공자인 의료체계를 동원하여 시행한 인구조절 정책이였다. 이 정책은 한국여성들의 재생산행위를 변화시킨 물질적 기반을 제공했다는 의미에서 중요하다. 그러나 이 정책은 모성의 근대화 혹은 근대적 출산행위라는 슬로건하에서 사회변화에 적응된 가부장적 모성과 소자녀 가정의 경제성을 실천하는데 초점이 있었지, 변화된 사회상황에서 여성이 자기 삶을 주도하기 위해 출산력을 조정하고 자신의 몸에 대한 통제력을 증대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지는 않았다. 따라서 여기에 제공된 피임써비스는 여성들의 재생산 통제를 남편이나 의료기관에 종속시키는 결과를 낳았고, 이러한 방법이 작동되지 않거나 제공되지 않을 때는 낙태를 시도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모성의 범주 속에서 논의되는 여성의 출산력은 여전히 가계계승이라는 중요한 의무를 담당해야 하기 때문에 아들을 낳기 위한 여아낙태가 시도되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따라서 비명시적인 가족계획 정책의 한 부분을 담당하고 있었다.


현지조사 자료에 따르면 여성들은 낙태를 변화하는 사회경제적 상황에 자신의 재생산을 적응시키는 적극적인 혹은 소극적 기재로 사용하고 있다. 게다가 우리 문화와 각 제도에 깊이 내재한 가부장제 성통제 규범은 사회변화에 적절한 제도적 대응을 전혀 해주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사회 경제적 기반이 달라진 상황하에서 생활하는 많은 취업 노동 여성들은 반복되는 낙태를 통해 자신의 출산력을 조절할 수밖에 없다. 또한 낙태는 여성들에게 과소의 차이는 있지만 시술시 몸에 가해지는 폭력으로 인해 사회적, 심리적, 정서적  손상을 줄뿐만 아니라 신체적 손상에 대한 두려움을 준다.

낙태는 여성들이 재생산과 자신의 몸에 대한 통제권을 얼마나 확보하고 있느냐, 그리고 여성들이 사용할 수 있는 출산조절 방법이 있느냐하는 문제와 연결되어 논의되어야 한다. 우리사회에서는 여성의 재생산권은 모성의 실현이란 측면에서 가족에, 남편에게 그리고 사회에 속해 있다. 이에 따라 출산조절의 주 방법 역시 여성이 자발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라기 보다는 남편이나 국가가 위임한 의료기관이나 의료 전문인에 의존한 것들이다. 더욱이 여자에게 가해지는 성규범은 여성의 재생산이나 몸은 수동적이라는 이데올로기를 만들어 내기 때문에, 출산조절에 대한 여성들의 대응은 소극적이고 방어적일 수밖에 없다.

낙태에 관한 논쟁에는 생명, 가족, 국가, 모성, 그리고 미혼 여성들의 성에 관한 복잡한 규범들과 여러 이데올로기들이 교차한다. 즉 낙태의 논의는 여성들의 재생산 활동이 생물학적 문제라기 보다는 많은 사회적 관계 속에 위치하는 사회적 규범적 문제라는 것을 분명히 시사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 논문이 제기하는 질문은 여성 자신들이 자신의 이해를 위해 자신의 삶의 조건을 창출해 나갈 때 낙태는 어떻게 조명되어야 하는가이다.

임신은 여성의 몸속에서 그리고 몸에 일어나는 현상이고 태어나는 아이의 발달과 양육에 대한 일차적이 책임을 여성이 지는 것이 오늘날 우리의 구체적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낙태는 기존의 성별분업체계 내에서 여성들이 사회적 참여를 위해 추구하는 사회적인 자유라는 차원에서, 그리고 여성의 몸에 대한 여성자신의 통제권을 확보한다는 개인적인 자유의 차원에서 접근되어야 한다. 따라서 낙태 문제는 피임, 출산, 그리고 육아에 대한 책임이 여자 개인에게서 사회로 이전되는 재생산의 사회화에 대한 요구와 여성의 재생산 능력에 대한 자기 통제를 획득하는 여성 중심의 재생산권의 확보와 함께 논의되야 한다.

개인적 자유의 필요성은 사회적 개입을 통한 모성의 사회화가 노동의 성별분업 내에서 여성이 담당했던 양육의 짐을 덜어줄 수는 있으나, 원하지 않은 임신을 계속하는 여성의 몸이 갖는 실존적 고통을 해결해 주지는 않기 때문이다. 몸은 재산도 아니고, 남에 의해서 침해되거나 찬탈 될 수도 없고, 또 양도할 수도 없는 그 사람에게만 속한다는 생각은 근대적 인간 개념의 핵심을 이룬다. 따라서 여성에게 의존해 있는 몸 속의 태아는 임산부의 소유이거나 몸의 일부라고 주장할 수는 없지만, 여성의 몸에서 일어나는 원하지 않은 임신이 여성의 건강과 생활에 영향을 준다면 이는 일종의 침해라고 간주할 수 있다. 이때 여성은 자기 결정에 의해 낙태를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몸에 관한 여성의 개인적 자유이다. 게다가 성폭행과 성을 통한 여성 통제 등 여러 가지 이유에서 원하지 않은 임신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여성에게 항상 있는 한, 낙태를 할 수 없게 한다는 것은 가부장제 지배 규범을 이용하여 여성에게 가하는 일종의 억압이며 생물학적 조건을 절대화하여 여성을 사회적으로 무력화시키는 것이다.

우리사회에서의 낙태는 사회적 개입을 통한 재생산의 사회화와 여성들의 출산조절 선택 및 성지식 획득을 규제했던 물질적 규범적 조건들을 바꾸는 것으로부터 논의되어야 한다. 그래야 낙태로부터 야기되는 여성의 건강 침해와 정서적 손상을 최소화할 수 있고, 가부장제 성통제 규범 때문에 성지식과 피임 써비스 접근에 어려웠던 현실이 개선 될 수 있다. 그리고 낙태를 비롯한 여성의 재생산 권리를 획득하기 위해서는 여성 스스로가 원하지 않은 임신을 예방할 수 있는 재생산 통제 방법 모색에 적극적이어야 한다. 재생산 자유는 여성 스스로가 출산조절 방법을 통제할 수 있게 됨으로써 여성이 갖는 생물학적 기능 자체가 여성에게 불리함이 되지 않는 문화적 제도적 상황을 만들고 거기에 참여하는 과정을 통해 확보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