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숙경,『미혼여성의 성에 관한 연구(낙태행위를 중심으로)』,이화여대 대학원, 1993


논문개요

이글은 낙태행위를 통해 미혼여성의 혼전성관계 각본을 분석하기 위한 것이다. 이 연구에서는 미혼여성의 성관계 경험을 통해 여성들의 성인식과 성관련 경험의 내용을 살펴보고, 주어진 각본에서 벗어난 여성들이 지배적 각본에 어떻게 적응하고 반발하고 있는지를 밝히고자 한다.

연구내용은 첫째, 혼전성경험의 내용을 통해 여성의 성인식, 성관계 수용의 기준, 성과 사랑, 그리고 결혼의 연속성에 대해서 살펴 볼 것이다. 둘째로 이러한 성관계 경험이 낙태행위와 어떻게 관련되는지를 피임과 임신, 그리고 낙태의 결정과 낙태경험에 이르는 과정을 통해 밝혀낼 것이다.

연구대상은 낙태경험이 있으며, 결혼을 전제로 지속적인 교제를 해온 여성들이다. 연구방법은 이들의 경험세계에 침투해 들어가기 위해서 사례 연구를 통한 심층면접법을 사용하였다. 면접은 1992년 2월에서 12월까지 실시되었다. 수집된 사례 수는 총 10사례이다. 이 연구를 통해 밝혀진 내용은 다음과 같다.

혼전성관계속에서 형성된 여성의 성에 대한 인식은 다양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례여성들은 성에 대해 부정적이고, 억압적이며, 피해의식적인 인식을 갖고 있었다. 여성의 성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성과 사랑, 결혼이 분리되기 어려운 여성의 현실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성관계에 나타난 남녀 권력관계에는 성, 사랑, 결혼의 연속선속에서 여성들이 어떻게 순응하고 반발하는지가 드러난다. 성관계를 갖기 이전에는 남성이 주도적이고 적극적으로 관계를 유도해 나가지만 성관계를 가진 이후에는 여성이 관계의 유지를 위해서 더욱 집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성관계가 결혼을 향한 과정으로서의 의미를 갖고 있으며 성에 대한 능동적 표현이나 요구가 어려운 상황에서 성과 사랑, 그리고 결혼의 연속성은 여성의 성을 통제하는 기제로 작용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통제는 피임의 실천을 저해하고 있다. 미혼여성이 피임을 요구하거나 준비할 경우 정숙하지 못한 여자라는 오명을 무릅써야 하기 때문에 여성들은 피임에 대한 지식이 있고 없고와 크게 상관없이 피임하기가 어렵다. 피임실행의 저조는 원하지 않았던 임신으로 이어지고 임신은 어머니됨의 경험이 아니라 부담스럽고 피하기 싶은 문제로 인식된다. 이러한 임신경험의 내용과 국가의 인구억제 정책으로 인한 낙태만연 풍조, 의료 관행등은 미혼여성의 임신이 낙태로 손쉽게 유도되게 만든다. 또한 혼전성관계와 임신을 드러내서는 안되기 때문에 낙태는 문제 해결을 위한 가장 손쉬운 대안으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낙태행위는 혼전성관계속에 드러난 지배적 성의 각본의 비합리성과 결함에 의해 파생된 문제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성관계의 경험속에 드러난 남녀 권력관계의 양상은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의 성은 전략적으로 활용하도록 만들고, 이러한 전략과 계산은 지배적 각본을 유지, 강화하게 한다.


Ⅰ. 서론

A. 문제제기 및 연구목적

이 연구는 많은 미혼여성들이 혼전성관계와 낙태를 경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이러한 문제들이 적절한 방법으로 충분히 연구되지 않아 왔다는 것에 문제제기한다.

우리나라는 가히 '낙태천국'이라고 불리울 정도로 낙태가 성행한다. 그리고 낙태의 증가를 성도덕의 문란과 타락의 징후로 곧바로 연결시키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혼전성경험과 낙태의 경험에 대한 내용이나 낙태를 야기하는 구조적 배경에 대해서는 사실상 밝혀진 바가 거의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서구에서는 태아의 생명에 대한 권리와 여성의 자기 신체에 대한 결정권을 둘러싸고 낙태논쟁이 가열되어 왔다. 최근에는 여성에게 낙태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진다고 해도 여성을 둘러싼 종속적 상황이 변환하지 않는다면 이러한 권리의 획득은 여성의 자유와 해방을 위한 진정한 대안이기 어렵다는 인식에 도달하고 있다. 또한 낙태를 둘러싼 여성의 구체적인 상황들이 제외된 윤리학적 논의 역시 논쟁을 위한 논쟁 이상이 아니라는 자성적인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이 확산되면서 여성의 낙태경험 내용을 드러내기 위한 작업들이 활발해졌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들어 카톨릭과 증산도등 종교계를 중심으로한 낙태반대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낙태논쟁은 학문적인 차원에서 진행되어 온 것이 아니다. 낙태와 관련된 담론은 종교계 일각에서 운동의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는 낙태반대의 목소리와 정부의 인구정책과 맞서서 허용과 금지를 둘러싼 논쟁으로 이어져 왔다. 우리나라의 낙태논쟁에서 특징적인 것은 여성의 권리에 대한 주장이 빠져 있다는 것이다.

신문지상에 연이어 '가열되는 낙태논쟁'이라는 제목으로 기사들이 등장하고 있지만 낙태경험 당사자인 여성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은 체 낙태를 하게 하려는 정부의 목소리와 낙태를 하지 못하게 하려는 종교계의 주장이 대치되고 있을 뿐이다.

통계로 보면 우리나라의 연간 낙태 건수는 전국적으로 150만건에 이르는데 이는 60만 실제 출생아수의 두배가 넘는 수치이다. 이같은 수치는 미혼여성의 낙태 건수까지 고려하여 추산한 것이지만 미혼여성의 낙태건수는 정확한 통계가 나와있지 않은 실정이다.


낙태에 대한 기존연구는 주로 기혼여성을 대상으로 하며, 실태와 의식조사에 한정되어 있고, 국가의 인구억제 정책의 일환으로 가족계획 정책의 효율성을 증진시키기 위해 시행된 것들이 대부분이다. 이러한 연구들은 낙태의 직접 경험 자인 여성들의 체험이나 상황에 대해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있기 때문에 인구억제 정책에 필요한 자료의 수집을 위한 질문을 위주로 맥락분리적인 요인과 변수를 나열하는데 그치고 있다.

미혼여성의 낙태에 대한 연구는 연구대상에 접근하는 것 자체가 어렵기 때문에 현황이나 실태파악도 되어 있지 못하다. 또한 기존연구에서는 미혼여성의 낙태문제를 '성도덕문란의 결과'라는 관점으로 파악하고 있다.

예를들어 미혼여성의 낙태문제에 초점을 맞춘 한 연구는 '성개방 풍조로 인한 사회악'으로서의 낙태가 증가하는 것에 문제제기하고 있다. 이 연구에서는 성개방 풍조가 여성의 경험속에서 어떻게 드러나는지에 초점이 맞추어지지 않기 때문에 낙태를 경험한 여성들은 성도덕이 문란하다는 평가로 이어지고 있다.

한국형사정책 연구원의 연구에서는 미혼여성의 낙태를 야기하는 가장 큰 요인으로 피임실행저조를 들었다. 그러나 이 연구에서는 왜 여성들이 피임을 하지 않는가, 여성들로 하여금 피임을 할 수 없게 하는 구조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더 이상 묻지 않고 있다.

미혼여성의 성에 대한 대부분의 연구물들은 성문제를 도덕적 타락의 관점에서 파악한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즉, '왜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는가'라는 물음이 '혼전성관계나 낙태, 미혼모등의 문제는 성의 타락'이라는 전제하에 이루어지기 때문에 이러한 성문제를 경험한 여성들은 기본적으로 정상적이지 않은 개인적 성향과 가족적 배경을 가진 비정상적인 여성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처음부터 성적으로 타락하거나 문제있는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문제상황에 빠진 개인은 그가 속해있는 사회의 모순과 자기 자신의 내부요인과의 상호연관속에서 특정 문제를 경험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존의 성규범상 일탈이라고 간주되는 성문제들에 접근할 때는 '왜 그리고 어떻게 해서 그러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는가'를 개인의 입장과 관점을 중심으로, 사회적인 조건과의 연관속에서 탐구해야 할 것이다. 또한 특정한 성문제가 일탈로 규정되는 것은 정당한가에 대해서도 문제제기할 필요가 있다.

특히 여성의 성관련 경험에 관련된 문제를 연구할 때는 여성을 둘러싼 사회문화적 조건과 여성의 성에 대한 경험을 둘러싼 조건들의 내용이 무엇인가를 물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낙태에 대한 연구는 여성의 성에 대한 경험속에 이러한 모순적 기대가 어떻게 드러나는지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낙태라는 사안 자체에 대해 연구하는 것 보다는 낙태에 이른 성관계 경험의 과정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다.


미혼여성의 성관계경험 역시 낙태문제와 마찬가지로 비공식적으로 존재하는 실재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그 경험세계가 알려지지 않아온 대표적인 예 중의 하나이다. 혼전성경험이 점차로 증가하고 있다는 실태조사나 성의식과 태도에 관한 연구들은 존재하지만 혼전성경험의 내용과 과정에 대한 연구는 전무하다. 혼전성경험은 연구주제로 설정되어 진지하게 탐구될 주제로 여겨지기 보다는 잡지기사나 흥미있는 화제거리고 인식되어 왔다. 이는 성을 비이성적이고 감정적인 차원의 문제로 바라보는 우리사회의 성에 대한 통념과 무관하지 않다.

80년대를 넘어 90년대에 들어서면서 성에 대한 담론이 증가하고 성해방의 풍조가 유입되면서 성에 대한 보수적인 공식규범과 실제 관행사이의 간격이 커지고 있으며 세대와 개인간의 성의식의 수위도 점차 다양해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혼여성이 성에 대한 경험을 어떻게 시작하며, 성관계가 포함된 이성교제가 여성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연구가 매우 필요하다고 볼 수 있다.

결혼적령기를 전후로 한 미혼여성의 이성교제가 여성으로서의 정체감과 태도를 보다 구체적으로 경험하게 되는 최초의 장으로서의 의미를 갖는다는 것이 여러 연구를 통해 지적되고 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이성교제의 구체적인 과정과 내용에 초점을 맞추어 행해진 연구물이 없기 때문에 이러한 경험이 여성에게 어떠한 변화를 가져오는지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알 수 없었다. 물론 모든 이성교제가 성관계경험을 포함한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낙태경험자의 성경험 내용을 살펴봄으로써 여성의 성에 대한 경험의 일면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성개방풍조와 보수적인 성규범의 혼재속에서 우리사회의 미혼여성은 혼란과 갈등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혼전성경험이 공식적으로는 금기이지만 비공식적으로는 조장되고 있는 현실적 조건은 낙태를 유발하는 배경이 된다고 볼 수 있다. 낙태는 현실과 공식적 규범사이의 괴리에 의해 야기되는 문제라는 전제아래 본 연구에서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물을 것이다.

첫째, 여성들은 결혼이라는 제도에 들어가기 이전에 어떤 경험을 하는 것일까? 특히 성경험이 포함된 이성교제에서 여성들은 무엇을 경험하는가?
둘째, 연애과정에서 여성들은 자신을 둘러싼 모순적이고 갈등적인 현실을 어떻게 극복하고 좌절하는가? 여성들의 성관계 수용은 대안적 각본의 창출을 의미하는가, 아니면 기존의 성규범을 강화하는 맥락속에 있는가?
셋째, 혼전성관계의 경험속에서 낙태를 야기하는 구조는 무엇인가?

이 연구는 문제를 드러내고 명명하는 것이 억압과 왜곡을 극복하는 적극적인 실천의 일환이라는 문제의식 아래 미혼여성의 성관계경험을 드러내어 가시화시키고, 그 내용을 여성의 관점에서 새롭게 '명명'하고 '승인'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Ⅲ. 종합논의

결혼제도 안에서의 성관계만을 합법적인 것으로 인정하는 지배적 각본의 틀에 벗어난 혼전성관계 경험은 어떠한 의미를 갖는가? 그리고 낙태를 유인하는 구조는 무엇인가? 사례분석을 통해 이러한 물음들에 대해 살펴보았다. 종합논의에서는 성과 사랑, 그리고 결혼의 연속성과 낙태행위가 갖는 의미에 대해 논의해보고자 한다.

혼전성관계는 성에 대한 무지와 방종의 결과로 여겨져 왔다. 다른 한편으로 여성의 피해자적이고 약자로서의 입장만을 강조할 경우에는, 결혼에 이르지 못한 혼전성관계의 문제는 가부장제 사회에서 보다 힘있는 자로서의 남성이 자신의 편리와 이익만을 추구하고 약자인 여성을 끝까지 책임지지 않은 것으로 여겨진다.

현실적으로 볼 때 혼전성관계의 경험은 여성에게 불리하다. 여성의 순결이 결혼을 위한 주요 자원이기 때문에 순결은 전략적으로 활용될 가능성도 높다. 결혼으로 이어지지 않은 성과 사랑은 미래의 결혼으로 향하기 위해 단속되고 조정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남성과 여성은 서로를 왜곡시키며 성관계경험을 주체적으로 극복하지 못하고, 지배적인 각본안으로 다시 편입해 들어가기 위해서 애쓰게 된다.

결혼에 이르지 않은 성관계 경험을 주체적으로 해석하고, 대안적인 각본을 새롭게 창조해 나가는 여성도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아직은 결혼에 이르지 않은 성관계경험을 당당하고 주체적으로 소화해내는 여성이 그리 많지 않다고 볼 수 있다.

혼전성관계가 여성에게 불이익이니까 가능하면 결혼전까지는 순결을 지켜야 한다는 당위적인 기준은 더 이상 현실에 들어맞지 않는다. 사례여성들은 혼전성관계가 여성에게 손해라는 현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성관계를 수용했다. 더 이상 주어진 각본에 자시늬 현실을 끼워맞추기만 하기는 어려워진 것이다.

현실은 전통적인 지배적 각본과 새로운 성개방의 각본이 혼제된 아노미상태로 존재한다. 이 두가지 요구속에서 여성들은 혼란한 성의식을 가진 상태로 사랑과 성관계, 성관계와 결혼이라는 이음새를 끊을 수 없는 상태에 있다.

성관계의 수용이 주체적인 선택일 수 있으려면 성관계가 남녀 두사람의 관게를 결혼할 사이로 규정해 버리는 것은 지양되어야 한다. 헤어져야 할 필연적인 이유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성관계의 경험이 두사람의 관계를 구속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랑과 성관계의 경험은 타인에 대한 깊은 이해와 인간에 대한 보다 성숙한 통찰을 가능하게 할 수도 있다. 사랑과 성에 대한 경험 자체가 여성을 억압하는 요인인 것이 아니라 여성으로 하여금 성과 사랑을 전략적으로 활용하게 하고, 약자로서의 계산을 불가피하게 만드는 현실이 문제되는 것이다.

여성의 성에 대한 수동적인 의식은 피임을 요구하기 어렵게 만들고, 원치 않은 임신을 미연에 예방하지 못하게 한다. 피임기구의 구입과 사용의 과정에 놓여있는 높은 장벽은 여성의 성에 대한 수동적 의식과 맞물려 피임실행을 저해한다. 또한 사랑으로 미화된 성관계는 피임이나 임신과 같은 실질적이고 필연적인 결과에 대한 예방과 배려를 하지 못하게 만든다. 성관계를 하면 임신이 된다는 것을 몰라서 피임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성관계가 낭만적으로 신비화되기 때문에 성관계와 피임이 연결되지 않으며, 성관계가 임신으로 이어지는 것에 대해 체감적인 인식을 얻지 못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대중매체의 영향이 매우 크다고 볼 수 있다.

낙태를 둘러싼 사회문화적 조건은 낙태가 아닌 다른 대안들에의 현실적 접근을 어렵게 만들며, 혼전성관계에 대한 사회적 비난은 임신상태를 은폐하도록 강제하기 때문에 여성들은 빠른 시일내에, 완전한 해결을 하기 위해 낙태를 더 선호하게 된다. 그리고 낙태의 경험은 혼전성관계에 대한 사회적 비난에 비정한 모성이라는 죄의식을 덧붙이게 되고, 여성의 자존감은 매우 낮아진다. 여성의 혼전성관계 경험속에는 낙태를 유인할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요인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사례분석을 통해 혼전성관계 경험속에서 성과 사랑, 결혼이 분리되기 어려운 여성의 현실적 조건들과, 이에 대해 여성들이 전략적으로 대응하는 모습들을 볼 수 있었다. 혼전성관계속에서 여성들은 결혼이 선택가능한 대안이 아니라 필수적인 생존기반임을 더욱 확실하고 구체적으로 체화하게 되거나, 자신의 약자로서의 위치를 실감한다. 여성이 전략적으로 약자로서의 계산을 한다는 것은 여성을 둘러싼 불평등한 현실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성을 둘러싼 상황이 변화한다면 사랑과 성, 결혼의 의미 역시 다른 내용을 가지게 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사회에서 혼전성관계의 경험은 선택가능한 대안적 삶의 방식으로서가 아니라 결혼에 이르는 과도기적 상태로 존재하고 있다. 전통적 사고에서 벗어나 새로운 의식을 갖고 있는 젊은 세대의 여성들은 때로 기존의 규범에 도전하기도 한다. 혼전성관계의 수용이 도전으로서의 의미를 갖는다면, 이후 결혼에 이르기 까지의 과정은 여성들의 반발과 도전을 무마하는 통로로 작용한다고 볼 수 있다. 혼전성관계와 낙태행위는 가부장적 성문화와 체제를 유지, 강화시키는 기제로 작용하는 것이다.


이러한 연구결과를 그림으로 표현한다면 다음과 같다.

   다양한 성행위의 존재               성에 대한 호기심과 수동적인 성의식
      (하위각본의 형성)  ------------->  혼재된 성의식(반발과 순응)-------

     보수적 성규범
----> (공식적으로 제공되는 단일한 지침)

     피임실행의 어려움, 대상화의 내면화, 신체에 대한 결정권 부재, 정부의 인구
------> 최초의 성관계 -------->연속적인 성관계경험(관계지속)----->임신--------

    정책, 의료관행, 낙태와 피임에 대한 정보부족
------> 낙태결정과 경험 ----> 관계유지의 필요성증가
                             ----->헤어짐 A 대안적 각본의 창출
                                             (성숙의 과정)
                                          B 죄의식의 내면화
                                             (과거있는 여자)

                             ------>결혼 A 기존의 각본에로의 편입
                                         B 대안적 각본의 창출

현실은 지배적 각본이 제시하는 단일한 지침에 개인의 삶을 끼워맞추기 어려워지고 있다. 이러한 현실변화 속에서 여성이 자신의 성에 대한 결정권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성에 대한 경험이 선택적인 것으로 변화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성교육이 현실변화에 대처할 수 있는 살아있는 내용으로 구성되어야 할 것이다. 성교육은 당위적인 순결규범의 강조를 넘어서 성에 대한 주체적이고 자발적인 선택의 기준에 대해 숙고할 수 있는 내용이 되어야 할 것이다. 자신의 의지에 반하는 수동적이고 나약한 결정을 내리지 않을 수 있도록 자신의 욕구와 선택이 갖는 의미에 대해 보다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또한 피임기구의 사용과 확보가 보다 용이할 수 있어야 한다. 혼전성경험의 존재를 인정하고, 피임기구의 확보를 용이하게 한다면 성문란과 혼란을 더 크게 조장할게 될 것이라는 우려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피임기구를 손쉽게 구할 수 있다 해서 성문란이 조장되는 것은 아니다. 성문란은 성에 대한 지나친 은폐와 그 반작용으로 범람하는 자극적인 성에 대한 담론들의 혼재에 의해 야기되는 것이다. 낙태와 같은 개인적 불행과 고통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는 피임기구의 사용과 구입의 양성화가 매우 필요하다.

혼전성관계는 앞으로 점점 더 일반적인 현상이 될 것이다. 이러한 현실변화를 인정하지 않은채 보수적인 성규범에 개인의 성행위를 끼워맞출 것만을 강요한다면 낙태와 같은 불행은 계속 증가하게 될 것이다. 혼전성관계와 낙태의 경험은 더 이상 은폐되어서는 안된다.

성(sexuality)은 인간의 본성이다. 인간이 자기 삶을 승화시키고 성숙한 성의식을 획득할 수 있으려면 성에 대한 경험과 선택에 있어서 일정한 자유의 폭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개인의 성정체감의 형성과 성관련 경험의 내용은 생득적이고 고정된 것이 아니다. 성정체감과 성적인 생활방식의 내용은 학습과 경험을 통해서 생 전반에 걸쳐 변화되고 개발된다. 그러므로 성숙한 성인 남녀의 성관련 경험은 성에 대한 구체적인 자기인식을 획득해 나가는 경험의 장으로서의 의미를 가질 수도 있는 것이다.

성에 대한 경험이 '성숙의 과정'으로서의 의미를 가질 수 있으려면 남성들은 자신의 성경험에 대해서는 허용적이면서도 여성에 대해서는 보수적인 이중적 태도를 지양해야 한다. 여성들도 스스로의 목소리로 이러한 경험속에 담긴 억압과 모순을 드러내야 할 것이다.

지금과 같은 과도기적 혼란상태에서 여성들이 성에 대한 경험과 인식에 있어서 보다 해방된 상황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여성들간의 경험을 공유하고 새롭게 해석할 수 있는 의식화모임과 연대가 이루어져야 한다. 여성이 자신의 성에 대한 경험을 '성숙의 과정으로 인식하기 위해서는 성에 대해 주체적으로 결정하고 선택할 수 있는 실천적 의식화의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자극적이고 감각적인 성적 쾌락을 추구하면서 인간을 소외시키는 무분별한 성개방, 성집착의 담론과 부수적 성규범이 혼재된 과도기적 상황에서 인간이 자신의 성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보수적 성규범의 겁데기를 벗기워내고 삶을 풍요롭게 하고 승화시킬 수 있는 성에 대한 새로운 규범과 문화를 형성해 나가야 할 것이다.


==================================== 목         차 =======================================

논문개요

Ⅰ. 서론 (1)
  A. 문제제기 및 연구목적(1)
  B. 이론적 논의와 연구문제(1)
  C. 연구대상 및 연구방법(26)

Ⅱ. 사례분석(31)
  A. 성에 대한 의식(31)
    1. 성에 대한 호기심과 욕구(31)
    2. 수동적인 의식(31)
  B. 최초의 성관계(35)
    1. 동의없는 성관계(36)
    2. 여성의 요구(39)
    3. 강제적인 성관계(40)
    4. 처녀막의 신화(42)
    5. 관계의 규정(44)
  C. 피임(46)
    1. 알면서도 하기 어려운 피임(47)
    2. 잘못된 정보와 사용법에 대한 무지(52)
    3. 불철저한 실행(55)
  D. 성관계수용의 기준과 교제의 목적(57)
    1. 사랑(58)
    2. 결혼(61)
  E. 남성중심적인 성관계와 임신의 경험(67)
    1. 정서적 합일감의 추구(67)
    2. 대상화의 내면화(71)
    3. 임신의 경험(76)
  F. 낙태의 결정과 경험(82)
    1. 선택할 만한 다른 대안의 부재(82)
    2. 낙태에 대한 정보부족(84)
    3. 유도되는 낙태(86)
    4. 낙태경험(95)
  G. 성경험의 의미(109)
    1. 자존감을 낮추는 오점(110)
    2. '성숙의 과정'으로서의 성경험(111)
    3. '결혼으로 향하는' 관계에서의 성경험(113)

Ⅲ.  종합논의(119)

참고문헌(125)   영문초록(13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