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수, 『법 인간 인권(제3판)』, 박영사, 1999


29. 낙태반대 운동의 나아갈 길 (pp. 448∼453)

오늘 우리는 낙태반대의 뜻을 같이하여 이 자리에 모였다. 낙태에 관한 찬반논쟁은 치열한 가치관의 논쟁일 뿐만 아니라 실천윤리적인 삶의 방향에 관한 논쟁이기도 하다. 생명윤리를 둘러싼 현대적인 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사형존폐론, 안락사 내지 존엄사의 인정 여부, 뇌사와 장기이식의 문제, 시험관 아기와 대리모의 문제, 인간복제 행위 등이 그것이다. 낙태문제는 인간의 생명을 둘러싸고 있는 논쟁일 뿐만 아니라, 저 이름 없고 얼굴없는 태아도 독립된 인격적 가치를 지닌 한 사람의 이웃으로 대할 수 있는 존재인가에 관한 가치고백적인 근본문제이기도 한 것이다.

낙태를 둘러싼 두 가지 극단적인 경향을 우리는 알고 있다. 「내 배는 내 것이다」라는 구호아래 모여든 자유여성들의 부르짖음 속에서 우리는 급진적인 경향을 볼 수 있다. 이들도 태아의 보호를 원칙적으로 인정하지만 임산부의 자기결정권이 태아의 생명보다 언제나 우선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태아를 정상적으로 출산할 것인가 중절할 것인가는 여성의 자연법적 권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자연법적 권리라면 태아의 생명불가침성도 자연법적 권리라는 사실을 이 주장은 간과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여성의 이익과 태아의 생명법칙사이에는 가치교량이 필요하다는 점도 간과하고 있다.

이에 비해 보수적 경향은 「낙태는 살인이다」라는 구호를 내세운다. 이 입장은 주로 기독교 윤리를 따르는 진영에서 주장되고 있다. 즉 수태순간부터 태아의 생명도 사람의 생명과 같이 보호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윤리신학 중에는 심지어 산모의 건강이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의료적인 낙태도 위법하며 다만 행위자의 형사책임만을 면제시켜 줄 뿐이라는 주장도 있고 수정란이 착상되는 것을 막는 피임방법도 피임이 아니라 초기낙태에 해당한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입장은 현대사회의 지배적인 법의식과 거리가 멀 뿐만 아니라 그 법적 확신위에 기초한 실정법적 규율과도 거리가 멀다. 왜냐하면 오늘날 그 법적 확신위에 기초한 실정법적 규율과도 거리가 멀다. 왜냐하면 오늘날 낙태에 대한 형법상의 규율은 일정한 사유, 즉 적응의 요인이 발생했을 때 일정한 기간 안에 시행하는 낙태를 위법하지 않은 것으로 취급하는 것이 일반적인 경향이기 때문이다.

1960년대 이후 몇몇 예외를 제외하고는 낙태의 자유화가 급속하게 번져가는 경향이다. 일본이 1958년 우생보호법을 제정해 인공유산을 실질적으로 자유화한 이래 미국도 1968년 이후 주에 따라 자유화 내지 규제완화 쪽으로 기울었고 영국도 1976년 낙태법을 제정한 이후, 입법자의 예상과 의도와는 달리 근 20년 동안 3백만 명의 태아가 살해되는 일을 조장하는 결과를 낳았으며 오늘날 유럽국가들, 동남아국가들, 중국 등 여러 지역에서 낙태의 규제완화 또는 인공유산의 자유화쪽으로 기울었다. 우리 나라도 예외는 아니어서 1973년 모자보건법이 제정되면서 규범적인 견제장치였던 형법상 낙태죄처벌은 정당화의 물결에 밀려 사문화되었고, 더욱이 정부의 인구정책과 맞물려 우리의 검찰, 법원이 낙태죄 통제를 외면한 사이 낙태죄는 거의 규범력을 상실한 지경에 이르렀다.


그 결과 지난 1967년부터 1988년까지 20년 동안 전 세계적으로 매년 약 5천5백만 명의 태아들이 죽어갔고, 우리나라도 연간 150만 명의 태아가 죽어가는 낙태왕국이 되어 버렸다. 어느 새 우리들의 의식은 낙태를 정상적이며 당연한 일로 받아들이는 풍조에 깊이 휩싸이게 되었다.

모자보건법 제정으로 낙태를 허용하는 합법적인 통로가 열리자 우리의 성풍속, 성개방적인 생활태도 및 가정과 전통윤리의 붕괴가 더욱 심화되어 낙태양상을 가능하게 하는 풍조에 가속이 붙게 되었다.

이러한 위급한 사태는 지금까지 책임 있는 의료인과 법률가 기독교 지성인들과 활동가들, 교회가 미온적이거나 침묵으로 일관 해 온데 그 책임의 일단이 있다고 생각한다. 환경오염과 환경파괴에 그토록 민감해진 일반시민단체와 언론매체들도 정작 가장 극심한 정신적 공해와 생명파괴에 해당하는 대량 학살적인 낙태문제에 대해서는 둔감하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태아의 생명을 귀찮은 물건처럼 취급하는 사회는 아무리 고상한 법제도와 의료제도와 문화 . 교육제도를 갖고 있다 할지라도 몰록의 우상 앞에 자녀의 생명을 제물로 드리는 힌놈의 골짜기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현대의 사탄은 말할 수 없는 피의 굶주림을 전쟁이나 대량학상을 통해 채우기보다는 우리들의 편의와 자유분방한 삶의 욕구를 충동시키는 도덕적 불감증을 양산한 뒤 의료인의 하얀 가운 밑에서와 법률가들의 검은 법복 밑에서 가능해진 대량의 낙태행위를 통해 채우고 있다.

그러는 사이에 우리의 의식은 전반적으로 황폐화 되었으며 가치있는 것과 덜 가치있는 것을 분별할 수 있는 판단력을 상실했다. 그 결과 우리 청소년들의 범죄와 비행은 날로 폭증하고 흉폭해져 가고 있으며 가정파괴범과 인신매매범과 같은 극악한 범죄가 속출하고 있다. 정부가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사형수들을 형장에 세우고 강력범죄에 철퇴를 가하려고 나섰으나 현실은 더욱 심각해져 가고 있다. 사회해체의 위기라고 할 수 있는 아노미상태에 우리 사회는 접근해 가고 있다.

태아의 한 생명을 존중하지 않고 물건처럼 처분의 대상으로 삼았던 우리사회의 전반적인 가치전도현상이 이제 정신적 . 문화적 자정능력을 파괴시켜, 마치 파괴된 자연환경이 인간에게 보복하듯 우리는 이제 파괴된 정신적 . 문화적 환경으로부터 우리의 삶의 안전과 행복을 위협당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간다운 생활을 위한 그 첫발걸음을 새로운 마음과 새로운 안목을 가지고 내딛어야 하겠다. 그러자면 가장 일반화된 고정관념의 틀을 깨고 우리는 생명가치의 존귀성과 태아도 수태된 이후부터 우리와 같은 생명의 주체로서 존대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선언하는 일로부터 공동작업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산아제한의 인구정책이 경제개발 정책과 손을 잡고 낙태를 조장했던 지난 경제개발시기의 국가정책이 잘못되었다는 점을 우리의 정부 스스로 시인하고 생명과 가정의 보호를 위해 정책에 우위를 두는 방향으로 정책전환이 이루어지도록 축구하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데 우리는 힘을 모아야겠다. 남아선호로 인한 딸의 낙태를 조장해 온 의료기술의 잘못된 사용과 낙태허용 조항을 빌미삼아 낙태를 폭넓게 실시해온 지금까지의 의료관행의 잘못을 지적하고 그의 예방을 위한 공동작업에 힘써야 하겠다.

강간 및 근친상간에 의한 임신, 태아가 기형아 일 때 허용해온 낙태시술이 정당화 될 수 없는 생명파괴 행위라는 점을 강조하고, 이러한 법의식의 확산을 위한 계몽과 법개정작업을 위한 공동작업에도 힘을 모아야하겠다.

산모의 생명이나 건강을 위한 낙태의 경우에도 그것이 12주 또는 늦어도 22주 이내에 허용될 수 있다는 원칙을 고수함으로써 그 정당성에 보다 엄격한 기간상의 제한을 가하고 그 기간을 넘어 산모의 생명을 위해 부득이 취해야 할 낙태의 경우(희귀한 경우이긴 하지만) 면책사유로 인정하는 입법적 손질을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하겠다. 낙태죄 처벌의 규범적인 장치를 완화하는 인상을 줌으로써 낙태통제를 느슨하게 하는 입법활동에 반대하며 낙태죄의 소추나 제재를 아예 포기함으로써 규범의 실효성을 박탤해 버리는 지금까지의 우리 검찰이나 법원의 사법적 관행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는 일에도 우리의 목소리를 한데 묶어야 할 것이다.

낙태를 조장하거나 묵시적으로 방임하는 사랑없는 사회의 무관심성을 지적하고 미혼모문제나 입양문제에 모두가 선한 사마리아인의 정신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생명과 사랑의 파이프라인을 전국적인 네트로 묶는 작업에 우리의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며 국가의 사회보장정책이 낙태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전환될 수 있도록 주의를 환기시키는데도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노력이 하나님 없는 사회에서 예수그리스도의 우리 주되심과 하나님이 우리 인생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신 분이시며 하나님이 생명의 주인이시며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우리 생명은 더할 바 없는 구속의 은총 아래 있음을 알리고 선포하는 선교적 차원의 작업임을 알고 있다. 또한 생명의 존귀성을 깊이 인식하므로 낙태반대운동에 참여하는 일이 생명을 파괴하는 온갖 현대적 우상들에 맞서 하나님 나라를 확정해 나가는 그리스도인들의 사명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이러한 낙태반대운동연합결성은 장기적 노력과 희생을 지급해야 할 대장정의 첫걸음에 불과하다. 그러나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빌 1:6)고한 말씀이 우리의 걸음속에 이루어 질 줄을 믿는 까닭에 우리는 낙태없는 사회의 소망스러운 전망을 미리 가슴속에 품고 함께 걸어가고자 하다. (낙태반대운동연합 결성식 9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