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일수, 『사랑과 희망의 법』,교육과학사, 1994


사형. 낙태. 뇌사 인정은 반기독교적이다 -(pp.302∼304)

사람의 생명은 천하보다 귀하다.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거듭난 생명은 더더욱 귀하다. 이같은 생명의 소중함을 기독교인은 누구보다 마음속 깊이 새기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저 어두운 감방 속에 갇혀 있는 흉악한 범죄자들에게도 기독교인들은 찾아간다. 그의 생명의 소중함을 알기 때문이다. 맹수와 독충이 우글거리는 저 대양산호섬에도 간다. 한갓 이름없는 들풀처럼 내버려진 토인들이지만 그들이 하나님께로부터 부여받은 생명의 소중함을 알기 때문이다.

모든 물질과 시공을 능가하는 지고한 생명의 가치가 그러나 오늘날 우리 사회의 현실에서는 너무나 가볍게 취급되고 있다. 다수인의 안전을 위해 극악한 범죄인으로 낙인찍힌 몇몇 사람들이 사형이란 제도 밑에서 합법적으로 죽어가고 있다. 여러 사람을 해쳤으니 너도 해를 입어 마땅하다는 생각 때문에 빈번한 사형집행에 대해 많은 기독교인들조차 당연한 일쯤으로 치부하기 쉽다.

산모의 건강과 위생학적 이유 때문에 또한 원치 않은 임신이라는 이유로 이 땅에서는 수많은 태아가 모자보건법상의 인공임신중절이란 미명아래 살해되고 있다. 청소년들에게 건전한 성교육의 기회가 널리 주어져야 할 뿐만 아니라 청소년들에게 유해한 음란 . 외설 출판물이나 비디오 같은 제작물들이 지금보다 훨씬 엄격하게 통제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또한 미혼모도 사회적인 차별대우를 받지 않고 생활해 나갈 수 있는 사회복지정책도 확대되어야 한다. 공단의 건설이나 새도시 건설에는 항상 젊은이들이 건전한 여가 생활을 즐길 수 있는 운동시설과 휴식공간이 충분히 마련되어야 한다. 이러한 사회정책을 통해 낙태와 같은 잔인한 행위가 미연에 예방되도록 해야 한다. 이와함께 28주 이내의 낙태를 허용하고 있는 모자보건법상의 관용조항은 필요한 최소한의 경우로 축소되어야 하고 부득이한 경우에 낙태가 허용될 때에도 그 기간은 20주 내지 22주 안으로 축소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낙태죄의 규범효력이 되살아 날 수 있도록 검찰과 법원이 낙태죄 규율에 관한 지금까지의 미온적인 태도에서 돌아서야 한다. 그러기 위해 교회는 저들에게 각성을 촉구해야 한다. 장기적인 반성과 장기적인 의식개혁을 통해서만 생명존중의 새로운 변화를 개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머지않아 장기이식수술에 유리하도록 인간의 생명존속기간도 빠르게는 몇시간, 더디게는 2주일 가량 단축될 전망이다. 지금까지 보통사람들의 생각으로는 호흡이 떠나고 맥박이 그쳐야 사람은 사망한 것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의학적으로는 뇌의 모든 기능이 회복할 수 있을 만큼 소실되었으면 이미 죽은 사람이며 비록 인공심폐기와 같은 기계작동에 의해 호흡이나 맥박이 뛰더라도 죽은 사람은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뇌사상태의 사람(?)에게서 장기를 적축하여 그것이 없어 죽어가는 삶의 생명을 구하면 이야말로 인간의 생명을 존중하는 일이 아니겠느냐라는 논리이다. 그러나 이같은 생각속에 아직도 인간의 생명을 다른 유용한 것과 비교하려는 공리적인 사고가 깔려있다. 인간의 생명앞에 숙연해지는 두려움과 엄숙함.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경외의 자세는 이미 인간의 생명을 유용한 목적과 다른 편의를 위한 수단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정 앞에서는 여지없이 부서지고 말 것이다. 그렇게 되면 생명의 경외심을 희생시켜 생명의 존귀함을 획득하려던 공리적 계산은 한낱 거짓말밖에 안될 것이다. 항상 사회적 약자들을 희생의 제물로 삼아 생명에 대한 실험과 파괴와 훼손이 자행되어 왔다는 사실을 주목하자. 아무런 구조와 해방의 가망성도 없이 깊은 절망속에 빠진 사형수들을 상대로 법과 제도는 생명과 빛으로의 희망을 주기보다는 사회전체의 공리를 위해 몇사람의 생명을 단두대의 이슬로 보내 버린다.

아무런 절규조차 할 수 없는 지극히 나약한 태아들을 사람들은 산모의 자율권과 건강, 그럴듯한 윤리적 기준을 내세워 쓸어 버린다. 의식을 잃은 채 창조주와 마지막 신비로운 화해의 교통을 하고 있는 저 뇌사자들을 상대로 돈있는 사람들은 의료적인 도움으로 그 장기를 넘겨받은 뒤 폐물처럼 처리해 버린다. 이제 이런 상황속에서 교회와 기독교인들은 약자들을 위해 소리쳐야 한다. 약자들의 생명을 위해 더이상 침묵해서는 안된다.